'화이트데이에 좋아하는 여학생의 책상에 사탕을 올려두기 위해 한밤중 학교로 잠입한다. 과연 나는 귀신이 씌어 복도를 순찰하는 수위를 피해 학교를 제대로 탈출할 수 있을까.'
2001년 발매된 PC 게임 '화이트데이'의 스토리라인이다. 게임에 몰입한 학생들이 현실 세계에서 수위를 슬금슬금 피할 정도로 돌풍이었다. 다만 3만5,000원이라는 고가(高價) , '불법 복제'가 횡행하던 저작권 인식 수준 탓에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나, 쉽게 실패라 말할 순 없다. 이 같은 PC 게임의 도전이 모여, 오늘날 한국 게임의 높은 위상을 만든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
가정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90~2000년대 초반은 PC 게임의 부흥기였다. 1992년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의 노력 끝에 '국산 게임' 몇 종류가 출시된 것이 시초다. '온라인 게임'이 세상에 등장할 때까지, 이른바 '고전 게임'이라 불리던 PC 게임은 많은 이에게 재미와 희망을 심어줬다.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은 그 시절 PC 게임에 대한 향수를 물씬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게임 제작자·게임 잡지 기자 출신 게임 덕후 3명이 함께 썼다. 지난해 5월 한정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에 1,126명이 후원해 8,090여만 원이 모일 정도로 뭇 게임팬의 기대를 모았던 책이, 최근 대중 독자를 만나기 위해 출간됐다.
책은 '국산 게임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거나,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명작' '걸작' '히트작'이라는 칭송을 받는 국산 게임 94종의 설명과 사진, 상세 정보 등을 종합했다.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에 담긴 16비트 PC용 게임 '폭스 레인저(1992)'에서부터, 훗날 발매 3일 만에 1만 장의 패키지가 팔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러브 2:파르페(2004)'까지. 그야말로 한국 PC 게임 도감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 한국은 'PC 온라인 게임 종주국' 'e스포츠가 태동한 나라'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임 강국이지만, 과거엔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오로지 '게임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게임을 만들고 즐겨온 이들이 있었다. 그 역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 책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