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 방안 보고서에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보고서에 숫자는 최대한 빼달라"는 국회 연금특위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 숫자 싸움에 휘말리는 걸 차단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알맹이가 빠진 개혁안 때문에 연금 개혁에 대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5일 연금특위에 따르면 민간자문위는 당초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인상 등을 제시하는 복수안을 보고서에 담으려고 했지만, 특위 요청으로 방향성만 제시하기로 했다. 민간자문위는 다음 주 위원들에게 초안을 받은 뒤 내부 검토를 거쳐 이달 말쯤 그동안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특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대한 수치를 담지 말아달라'는 주문에 따라 보고서에는 주제별로 복수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A위원의 B안, C위원의 D안 식으로 병렬 기재된다. 가장 큰 쟁점인 모수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의 경우 '재정 안정화 방안', '소득 보장 강화 방안' 등 두 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자문위 내부 회의에선 보험료율(현재 9%) 12~15%로 인상, 소득대체율 30~50%로 조정 등 복수안이 논의된 바 있다.
국회 연금특위가 민감하게 반응한 건 자문위안을 토대로 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부정적 여론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5%로 보험료율 인상' 등이 강조되면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인데 너무 올리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논의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험료율 인상 관련 보도에 "정부안이 아니다"라고 공개 반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9일 특위 여야 간사가 자문위에 "구조개혁 방안을 더 제시해 달라"고 주문한 것도 더 큰 개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특위 관계자는 "5년마다 하는 모수개혁에만 초점을 맞추면 사회적 변화에 맞는 대개혁은 또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개혁안이 자칫 개혁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납부하는 보험료가 얼마나 오를지, 연금은 얼마나 받을지인데, 이 내용이 제시되지 않으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문위 내부에서도 "수치 없이 어떻게 여론을 조성하느냐. 힘이 많이 빠진 상황"이란 의견이 나왔다.
국회 연금특위와 자문위는 개혁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 이르면 3월 말쯤 연금 구조개혁까지 담은 보고서를 추가로 제출할 계획이다. 한 자문위원은 "수치로 여론이 시끄러워지면 큰 틀의 논의가 어렵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라며 "퇴직연금과 직역연금 등 연금 체계 전반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