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마라도 고양이협의체 패싱? 합의 없이 4마리 반출 논란

입력
2023.02.16 09:00
협의체 구성하고도 어떤 논의과정 없이
고양이 4마리 포획해 섬 밖으로 이미 반출
협의체 "일방통행식 진행에 진정성 의문"
문화재청 "2차 협의체 회의 때 공유할 것"


문화재청마라도 내 고양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와 동물단체,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도 이들과 논의 없이 고양이를 포획해 논란이 되고 있다. 협의체 관계자들은 문화재청과 제주도가 '고양이 포획∙반출'이라는 방침을 정해놓고 협의체를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1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고립된 섬의 생물 피해 저감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은 제주대 연구팀은 지난 10~11일 마라도를 방문해 외관상 상처가 있는 고양이 네 마리를 포획해 제주대 수의대 동물병원으로 옮겼다. 11일에는 10여 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마을개발위원회(주민자치위원회)와 만나 '천연보호구역의 여건을 고려할 때 조류 보호를 위한 길고양이 반출에 찬성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고양이가 천연기념물 뿔쇠오리에게 피해를 준다는 민원에 따라 대규모 포획을 계획했으나 '준비 안 된 정책'이라는 지적(본보 1월 21일자)에 일단 포획을 보류하고 지난달 31일 의견수렴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후 이달 10일 협의체와 연구용역팀이 마라도에서 현장 모니터링을 하기로 합의했었다. 이 자리에서 고양이 포획 기준이나 포획 후 방안 등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지난 10일 협의체 회의가 열리지 못한 상황에서 문화재청과 연구팀이 고양이 4마리를 섬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일부 협의체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강창완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지회장은 "첫 회의에서 2차 일정 이외에 정확하게 합의된 건 없었다"며 "이후 문화재청으로부터 협의체와 관련해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고양이 보호 방안이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재청과 연구팀이 고양이를 포획해 섬 밖으로 반출했는데 협의체를 구성했으면 함께 논의하고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협의체 일정 역시 문화재청이 일방통보식으로 결정해 관계자들의 불만도 커졌다. 17일 예정된 2차 협의체 회의에 일부 관계자들은 다른 일정이 있거나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참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예찬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 연구원은 "문화재청에서 공동협의체를 진행하는 방식이 굉장히 급작스럽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회의에 참여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의견수렴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첫 회의 때 연구용역팀이 2월 초 수의사의 입회하에 고양이를 모니터링하고 구조와 치료를 시작한다는 일정을 설명했다"며 "마을 주민자치위원장의 동의하에 고양이를 반출해 치료 중이며 구체적 계획은 17일 협의체 회의 때 공유하겠다"고 설명했다.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합의한 부분은 협의체와 연구용역팀이 동행해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었다"며 "문화재청과 제주도는 형식상 필요해 협의체를 꾸린 것 같다. 고양이 보호관리 방안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반출한 조치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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