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지만 국민 약 87%가 가톨릭 신자여서 서구 국가 중 가톨릭교회 영향력이 바티칸시국 다음으로 큰 나라로 알려져 있다. 헌법에도 가톨릭 교리의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1937년 개정 헌법에 이혼이 헌법으로 금지됐을 정도였다.
그 강고한 보수의 종교-제도적 아성에 1979년 12월 첫 균열이 생겼다. 쌍둥이를 포함 네 자녀를 둔 만 27세 주부 메리 맥기(Mary McGee)의 피임권이 발단이었다. 임신-출산 후유증으로 심각한 뇌혈전증을 얻어 뇌졸중과 일시적 마비증상까지 겪은 맥기는 다시 임신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맥기에게 다이어프램이라는 삽입형 피임기구 시술과 살정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형법은 1935년 이래 피임약과 도구 수입-사용을 금지했다. 그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아일랜드 대법원은 1979년 12월, ‘피임도구(약) 사용은 헌법이 보장한 부부의 프라이버시’라고 4대 1로 판결했다.
보건부는 이듬해 부부 가족계획 목적에 한해, 의사 처방으로 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교회는 ‘도덕적 부패가 극심해져 사생아와 낙태, 성병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했고, 반대편의 여성인권단체 등은 개정 법률도 여전히 너무 엄격하다고 반발했다.
의회는 1985년 2월 20일 83대 80이란 박빙의 표차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의사 처방전 없이도 비의료용 피임약(도구)을 살 수 있고, 병원과 클리닉에서 피임약을 배포할 수 있도록 했다.
1997년 아일랜드 의회는, 교황 바오로 2세와 테레사 수녀의 공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혼도 합법화했고, 2019년 말 ‘이혼 전 만 4년 별거’ 전제도 ‘최소 2년’으로 완화했다. 2015년에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됐고, 2018년 국민투표로 낙태 합법화 수정안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