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이곳의 풍경은 전날 밤보다 훨씬 더 처참하고 참혹했다. 도시는 폐허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대재앙에 빠뜨린 규모 7.8 강진의 진원지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지진은 최소 2만 명 이상의 목숨만 앗아간 게 아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일상도 통째로 뒤흔들어 놨다. 생존자들은 지금도 공포감에 떨고 있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의 기억을 잠시나마 뒤로한 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살아 있을지도 모를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밤낮없는 사투를 벌이는 생존자도 많다. 구조대원 일손이 부족하니 주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어둠이 걷히고 해가 뜨면 수색·구조 작업은 더 활발해진다. 굴삭기가 큰 물체를 들어 올리면, 옆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잔해 밑으로 들어가 실종자를 찾는다.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기도하며 너도나도 손을 보탠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일상'이다.
이날 오전 지진 피해 현장의 한 언덕에 오르자, 온통 뿌옇기만 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붕괴된 건물 잔해가 내뿜는 먼지, 이를 재우려 뿌리는 물, 영하의 날씨 속에 몸을 녹이고자 피운 모닥불 연기가 온통 뒤섞인 탓이다. 마치 안개가 깔린 듯했다.
이곳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묵묵히 담배 연기만 내뿜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어린 아들을 안고 있던 한 남성은 "저 마을을 보고 있으면 슬프고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실종 상태인 가족이 있어서 마을을 떠날 수가 없다.
구조 작업 현장은 급박했다. 거주자가 많았던 곳일수록, 그래서 실종자도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일수록 굴삭기는 더 바삐 움직였다. 주저앉은 건물들 잔해에서 누군가 발견되면 곧장 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 주변엔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굴삭기 주변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전문 구조 인력이 아니다. 현지의 평범한 주민들이다. 굴삭기가 건물 잔해를 들어 올리는 순간, 이들은 그 아래로 우르르 몰려갔다. 뒤이어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망치로 돌을 부수고, 펜치를 가져와 철근을 끊었다. 한 중년 남성은 "(일반인인데도) 어느새 구조 작업에 익숙해졌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중장비(전문가)와 맨손(일반인)의 '슬픈 협업'이다.
하지만 위험천만해 보였다. 굴삭기에는 이제 막 들어 올린 커다란 콘크리트 잔해 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구조에 나선 주민들을 언제 덮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가득한 먼지 탓에 눈을 뜨기도,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원래 건물 안에 숨어 있던, 그러나 지금은 엿가락처럼 휜 채 군데군데 튀어나온 철근 때문에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족 모두 안전하다는 무함마드씨도 구조 작업에 동참 중이다. 그는 "친구의 가족이 건물 밑에 있다.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절망 속에서 실낱 같은 기대를 품고 있는 친구 옆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손을 보탰다. 울먹이는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는 역할도 그의 몫이다. '나도 돕겠다'며 구조 현장에 직접 들어가려는 노모를 말리는 남성도 눈에 띄었다.
무언가 찾아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건 울음소리다. 특히 건물 잔해에서 누군가의 소지품이 발견되면 모두가 분주해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은 울음바다가 됐다. 사랑하는 이를 드디어 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아니면 영원히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꺼번에 섞여 표출되기 때문이다. 한 여성은 더는 보기 힘들다는 듯, 뒤돌아 앉아 눈물을 훔치기만 했다.
에네스씨는 "지진 발생 후 8~10시간 동안 정부의 구조 지원이 없었다"며 "(카라만마라슈가) 지진 위험 지대에 위치해 있으니, 대형 참사를 막도록 미리 준비를 했거나 사고 대응이 조금만 빨랐어도 이렇게 슬프진 않을 것"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실종자가 많은 곳일수록 사람들로 붐볐다. 실종자 발견 즉시 확인이 가능하도록 가족과 친구, 이웃이 인근에 임시 텐트를 친 탓이다. 도로도 이들의 차량으로 꽉 찼다. 임시 텐트 앞 간이 식탁과 의자에서 허기를 채우던 한 여성은 수색 현장이 웅성거리자, 즉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달려갔다.
빵과 물, 과자, 주스 등 각종 구호 물품도 이곳으로 몰린다. 지진 당시 무너지진 않았으나 위태롭게 서 있는 건물들 사이 비좁은 길로는 구호품을 실은 대형 트럭이 아슬아슬 오가고 있다.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이른바 '차박'도 흔한 풍경이다. 어린 딸 셋과 아내 등 다섯 식구가 차 한 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남성에게 '아이들 안전을 생각하면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우리 집은 붕괴되지 않아 가족 모두 목숨을 건졌어요. 하지만 무너진 옆 건물들에 갇힌 이웃 4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남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