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수주 안에 새로운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바드’가 일반인들에게 서비스될 것이다.”
이례적인 발표였지만 다급함도 역력했다. 오래전부터 야심작으로 추진해왔던 프로젝트를 사전에 회사 차원에서 직접 공개한 전례는 드물었던 터다. 미완성된 신규 서비스나 신제품 출시에 관한 한 보안을 최우선으로 여겨왔던 정보기술(IT) 업계의 특성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6일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공식 블로그로 전한 향후 계획에서 읽힌 대목이다. 구체적인 배경이 생략됐지만 최근 IT업계의 블랙홀로 자리한 미국 스타트업 오픈 인공지능(AI)의 생성형 AI인 ‘챗GPT’를 자사 모든 제품에 장착시키겠다고 밝힌 마이크로소프트(MS)의 깜짝 발표에 대한 즉각적인 맞대응 성격으로 보여서다. 지난 2016년 3월, 당시 세계 바둑계의 최정상으로 군림했던 이세돌 9단에게 완승한 ‘알파고’ 덕분에 글로벌 AI 분야 선구자로 각인된 구글이 허를 찔리면서 갑작스럽게 꺼내 든 카드처럼 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2월 공개된 챗GPT는 출시된 지 2개월 만에 사용자 1억 명 돌파와 더불어 세계 IT 업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세를 탄 오픈 AI에선 월 20달러(약 2만4,000원) 수준의 유료 버전 모델 출시 계획까지 내놨다. MS는 오픈 AI에 수년간 최소 100억 달러(약 12조3,000억 원)의 대규모 투자 방침도 밝힌 상태다.
파장은 당장 20년 가까이 장악해온 구글의 글로벌 검색시장으로 퍼진 상황이다. 오픈 AI의 챗GPT에 기반한 최신형 AI를 탑재시킨 MS 검색엔진 ‘빙’이 7일 공개되면서다. 이는 당초 예정됐던 출시 일정보다 1개월가량 앞당긴 행보다. 특히 새롭게 공개된 빙은 1시간 전에 나왔던 소식도 분석, 이용자들에게 최신 정보를 제공하도록 고안됐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오늘은 검색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 날이다”며 “이제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됐고 우리는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빙을 내세워 세계 검색시장의 절대강자인 구글과 정면승부에 나서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글로벌 검색 엔진 시장 점유율에서 구글은 92.9%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빙(3.05%)과 야후(1.2%) 등이 멀찌감치 뒤를 따랐다. 상당한 격차로 뒤처진 빙에 챗GPT를 장착, 본격적인 구글 추격전에 나서겠다는 게 MS의 계산이다.
반면 MS에 일격을 당하면서 때이른 대응에 나선 구글은 초반 스텝부터 엉킨 모습이다. MS의 새 빙에 맞설 카드로 꺼내 든 구글 바드가 처음부터 오류를 드러내면서다.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연된 바드는 "9세 어린이에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JWST)의 새로운 발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라고 주어진 질문에 "태양계 밖의 행성을 처음 찍는 데 사용됐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미국 항공우주국에 의하면 태양계 밖 행성을 처음 촬영한 것은 JWST가 아닌 2004년 유럽남방천문대의 초거대 망원경 ‘VLT’(Very Large Telescope)로 확인됐다. '바드'가 제시한 오답은 검색시장 경쟁력의 바로미터인 정확성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날 “생성형 AI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정보를 다룰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했던 프라바카르 라그하반 구글 수석 부사장의 예측에 무게감만 떨어뜨렸다. 결과적으로 3년 전, 회사에서 나갔던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까지 재소환, AI에 공을 들였던 구글로선 체면을 구긴 모양새다.
시장 반응 역시 민감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전날보다 7.68% 이상 급락했다. 기대 이하의 바드 성능으로 불안감만 증폭시키면서 하루 만에 1,000억 달러(약 126조2,200억 원) 상당의 시가 총액이 증발했다.
한편 MS로부터 시작된 AI 대전은 세계 각국으로 확전될 태세다. 중국 최대 검색 기업인 바이두가 다음 달 챗GPT와 흡사한 AI 챗봇을 출시할 예정인 가운데 러시아 얀덱스 역시 유사한 형태의 AI 서비스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 또한 챗GPT와 유사한 대화형 챗봇의 내부 테스트에 착수했다. 국내에선 네이버가 상반기에 한국판 챗GPT인 ‘서치GPT’를, 카카오는 자체 개발한 대화형 AI를 각각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