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뇌전증 병역비리' 배구선수 조재성 등 47명 무더기 기소

입력
2023.02.09 14:25
브로커 시나리오 따라 치밀한 범행
뇌전증 병역 면탈 기소자 70명으로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28ㆍOK금융그룹) 등 허위 뇌전증 진단을 받아 병역 등급을 낮추거나 면제받은 병역면탈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벌써 70명이 뇌전증을 악용한 신종 병역비리 수법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서울남부지검ㆍ병무청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은 9일 프로스포츠 선수와 배우 등 병역면탈자 42명과 이들을 도운 가족ㆍ지인 5명 등 47명을 병역법 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병역면탈자 중에는 조재성 외에도 프로축구 선수 2명, 골프ㆍ배드민턴ㆍ승마ㆍ육상ㆍ조정 선수와 영화배우, 의대생이 포함됐다. 래퍼 라비(30ㆍ본명 김원식)와 부장판사 출신의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아들 등은 이번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기소 제외자도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에 따르면 병역면탈자 42명은 앞서 구속기소된 브로커 구모(47)씨가 제시한 ‘맞춤형’ 시나리오에 따라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한 뒤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고, 이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거나 등급을 낮춘 혐의를 받는다.

의뢰인들은 뇌전증 발작이 왔다며 119에 신고해 응급실에 실려가고 동네 병ㆍ의원과 대학병원 등 3차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1, 2년에 걸쳐 가짜 뇌전증 환자 기록을 만들었다. 뇌파 검사에서 이상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도 발작 등 임상 증상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면 진단받을 수 있는 뇌전증의 특성을 악용한 것이다.

구씨는 병역면탈자들이 가짜 환자로 들통나지 않도록 병원 검사 전에 실제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시키고 점검했다. 서둘러 군 면제를 받아야 하는 의뢰인에게는 발작 등을 허위로 119에 신고해 대학병원 응급실에 보내기도 했다. 병역면탈자들은 구씨에게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적게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6,000만 원까지 건넸다. 구씨가 이들에게서 받은 돈은 총 6억3,425만 원에 달한다.

함께 기소된 가족과 지인들도 브로커와 직접 계약하고 대가를 지급하거나, 119 신고 과정에서 목격자 행세를 하는 등 병역면탈 범행에 적극 가담했다. 이들은 검찰과 병무청 조사에서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6일 또 다른 브로커 김모(37)씨를 구속기소하고, 병역면탈자 15명과 범행에 적극 가담한 면탈자 가족 및 지인 6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지금까지 신종 뇌전증 병역 비리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70명에 이른다.

검찰 관계자는 “나머지 병역면탈자를 비롯해 서초구청 사회복무요원 병역면탈 관련 의혹 등 새로운 혐의도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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