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운명을 닮은 동종, 문화재에도 운명이 있을까?

입력
2023.02.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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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 고려청자와 함께 명성 얻은 '코리안 벨'
국내에 남은 5점 통일신라 종 가운데 2점은 파손
안타까운 파손 사연이 일깨우는 문화재의 운명

한국 종은 고려불화, 고려청자와 더불어 최고의 명성을 가진 세계적 명품이다. 그래서 한국 종은 '코리안 벨(Korean Bell)'이라는 별도 학명을 가지고 있다. 종이 시작된 곳은 중국이지만, 종을 발전·완성시킨 곳은 한반도인 셈이다.

한국 종의 정점은 통일신라다. 아이러니하게도 종의 발전은 통일신라에서 조선으로 점차 퇴보하는 모양새다. 즉 1,000년이 넘는 역발전을 하고 있다는 말씀.

현존하는 통일신라 종은 총 10점인데, 이 중 5점은 일본에 있다. 이는 우리네 질곡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해서 몹시 씁쓸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있는 5점 중 2점은 파손된, 정확하게는 녹아내린 종이다.

흥미로운 건 이 5점 중 2점이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에 있었다는 것. 먼저 '상원사 동종(725년)'은 원래 어느 사찰의 종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숭유억불의 바람이 거세던 조선초에 사찰은 폐사되고, 종은 안동 문루에서 성문을 여닫는 용도로 재활용되고 있었다.

종의 운명을 바꾼 것은 신미 대사와 세조다. 신미는 세조가 악성질환으로 고통받자, 당시 화재로 위축된 오대산 상원사를 세조의 기도처(원찰)로 중창한다. 이 과정에서 최고의 종을 수소문하는데, 안동 문루에 있던 종이 상원사로 옮겨지게 된다.

'상원사 동종'이 안동 문루를 떠난 것은 운이 좋았다. 문루의 종들이 대부분 파괴되어 남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상원사는 종이 보존되도록 한 보호막 역할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원사 동종'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1년 1·4후퇴 과정에서, 아군은 남하하는 공산군이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모든 사찰을 소각한다. 이때 상원사 역시 소각 대상이었다. 만일 이때 상원사가 소각되었다면, 동종 역시 녹아내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종은 거대한 금속체이므로 열에 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5년 낙산사 화재 때, 보물 제479호였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내린 것을 생각하면 종의 녹는 점은 생각보다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원사는 1·4후퇴 당시 교정(종정)이었던 한암 선사가 죽음을 불사하며 막았기 때문에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 즉 '상원사 동종'은 한암에 의해 절체절명의 죽을(녹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당시 오대산 월정사에는 강원도 양양의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선림원지 출토종(804년)'이 1점 더 있었다. 그러나 이 종은 '국보사찰은 소각하지 않는다'는 아군의 말을 믿고 승려들이 피란 가는 바람에 방화의 불길 속에 녹아내리고 만다. 현재 남은 부분은 춘천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진기한 것은 이 종의 발견 시기가 해방 후인 1948년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종이 발견될 당시, 주위에는 목탄을 넣어 일부러 묻은 흔적이 있었다. 즉 사찰이 불타면서 녹지 않고 우연히 남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파묻어 지켜려 했던 것이다.

왜 종을 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어떤 전란 과정에서 이렇게라도 종을 지키고, 안정된 후에 되돌아 오려고 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었고, 종은 이후 냉동인간처럼 천년의 잠을 자게 된다.

그런데 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종이 불과 3년 만에 녹아내린 것이다. 매미는 17년을 땅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성충이 된 후에는 한 달 만에 죽는다. 이런 매미의 아이러니가 '선림원지 출토종'에도 서려 있는 것이다.

발견되지 않았다면 또는 그 시점만 아니었다면, '선림원지 출토종'은 국보의 위상 속에 화려하게 날아올랐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화재에도 나름의 운명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