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못 믿는 저신용사회... 인도 뚫으려면 가족 네트워크 잡아야" [인도시장 바로보기]

입력
2023.02.18 05:30
5면
[인도시장 바로보기②]
강성용 서울대 남아시아센터장 인터뷰


"인도인들은 자기 조국이 미국 중국과 동등한 강대국 수준에 올라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인지부조화는 인도가 미·중 사이에서 당당하게 중립외교를 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죠. 하지만 인도는 불과 몇년 전까지 화장실을 쓸 수 있는 농촌가구 비율이 39%에 그쳤어요. 화장실 1억 개 보급이 정부의 자랑스러운 성과일 정도로 낙후된 국가입니다."

강성용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인문학연구원 교수)은 국내에서 손 꼽히는 인도 전문가다. 인도 철학 및 종교학의 권위자지만, 현대 정치·경제·사회 연구도 병행해 인도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갖고 있다. 강 센터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도 경제가 처한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냉정하고 솔직한 분석을 전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인도

강 센터장은 인도가 국제무대에 제대로 된 경제 주체로 등장한 것은 불과 30년 전인 1991년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는 인도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 체제를 폐쇄형 계획경제에서 개방형 시장경제로 전환한 원년이다. 독립(1947년) 이후 전근대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인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급격한 전환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근대국가 이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계를 생략하고 반쪽짜리 산업생태계로 성장을 꾀했다. 열악한 사회적 인프라, 없다시피한 사회보장제도, 은행을 믿지 못하는 저신용사회, 낮은 금융 수준에 따른 자본 유동화 실패 등이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다.

"인도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마을 촌장이 재판을 주관할 정도로 사법제도가 미비합니다."

강 센터장은 도로 교통 통신 등 유형의 인프라뿐만 아니라 각종 제도 등 무형의 인프라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제도가 바로 열악한 프라의 전형"이라며 "3심까지 소송 자체가 5,000만 건이나 밀려있어 소송에 걸리면 최대 30~40년은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문화 자체도 독특하다. 인도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표적 스포츠는 크리켓인데, 시합 하나가 일주일 이상 걸린다. 강 센터장은 "인도는 인구가 많은 탓에 선거 기간만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며 "정치부터 문화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인식, 생활양식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인도를 아는 전문가가 없다

이렇게나 다른 인도지만,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오랫동안 '기피 지역'으로 취급받아 온 탓에 국내엔 양질의 인도 전문가가 부족하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취업 기회가 많은 중국이나 동남아 쪽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인도학을 심도 있게 연구할 유인 요소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과 기업인에게도 인도는 '파견 기피국'이다. 낙후된 생활 환경이나 불안한 치안 탓이다. 이렇게 전문가가 없어 인도 진출에 실패하고, 인도 시장 개척을 아예 포기하면서 전문가를 양성할 기회를 계속 잃고 마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셈이다.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인도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바로 성범죄죠. 그렇다면 젊은 세대 입장에선 인도를 공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강 센터장은 젊은 세대마저 인도를 기피하고 있어 이런 전문가 부족 현상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교수는 "인도의 연애결혼 비율이 4%가 채 되지 않는다"며 "인도공과대학(IIT)를 나온 젊은 세대도 결혼식 당일에서야 배우자 얼굴을 처음 보는 경우가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폐쇄적인 저신뢰사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만간 일본을 제치게 되는 세계 3위 경제대국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강 센터장은 상품 기획, 현지 정보 조사, 유통망 확보 등 인도 진출의 핵심 작업은 현지를 잘 아는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현지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씨족문화로 이뤄진 인도의 가족 네트워크를 뚫어야 한다"며 "관시 문화로 대표되는 중국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적 교류를 강조하는 강 센터장은 서울대와 인도경영대학원(IIMB) 사이에 한국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도의 가족기업 경영자와 국내 중견기업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