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은 좋겠다

입력
2023.02.08 18:00
26면
너무 당당하게 정부에 미분양 사달라 
정부 두려움이 건설사엔 든든한 ‘빽’ 
자구책 없는 구제는 더 이상 없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주말 저녁 가끔 백화점 식품매장에 간다. 이른바 ‘떨이’ 타임이다. 낮에 한 팩에 5,000~6,000원씩 팔던 분식류를 세 팩에 1만 원에 판다. 할인율이 높게는 50%에 달한다. 베이커리류도, 초밥류도, 할인 않는 품목이 없다. 그날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손실로 떠안아야 하니 당연하다.

마감세일도 전에 인심 좋은 키다리 아저씨가 재고를 사주겠다는 업종이 있다. 건설업종이다. 미분양이 발생하면 정부가 덥석 나선다. 그러니 애당초 분양가를 크게 낮춰 팔 생각이 없다.

정부는 왜 분식집이나 빵가게의 재고는 모른 척하면서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는 사주려는 걸까. 건설사들만 유달리 예뻐서는 물론 아니다. 떡볶이나 빵은 팔리지 않아도 해당 자영업자만 손해 보면 그만이지만, 미분양은 방치하면 건설사 부도에 그치지 않고 금융회사에까지 부실이 전이된다. 정부의 그 두려움이 건설사엔 든든한 ‘빽’이다.

작년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 호에 육박했다. 1년 새 4배 가까이 늘었다. 공사가 끝났는데도 분양되지 못한 악성 미분양도 7,500호가 넘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분양이 16만 호에 달했던 것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는 건 수요자들의 기대보다 가격이 높다는 얘기다. 가격을 내려야 한다. 그래도 안 팔리면, 더 내려야 한다. 시장이 아무리 나빠도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가격대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분양이 늘어나니 분양가를 낮출 생각은 않고 너무도 당당하게 정부에 손을 벌린다. 중소∙중견건설사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LH 등 공공에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했다. “주택업계 상황이 금융권 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데, 미분양 주택을 사주지 않으면 경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협박에 가깝다.

전례가 있으니 더 적극적이다. 미분양이 최고점을 찍은 2008년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했고, 대한주택보증(현 HUG)은 준공 전 미분양 주택을 준공 후에 다시 건설사에 되파는 환매조건부 방식으로 매입해줬다. 그때도 사줬으니, 지금도 사달라는 것이다.

이런 건설사들을 향해 “미분양을 매입할 때가 아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박수를 보낸다. 강북 미분양 주택을 고가에 매입한 LH를 직격해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 안 산다”고 질타한 것에는 더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럼에도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건 이미 법과 제도를 무더기로 뜯어고치는 방식으로 미분양을 확 줄여줘서다.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라는 별칭이 붙은 1∙3 부동산 대책이 그렇다. 대책은 온통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둔촌주공의 미분양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1년만 지나면 분양권 전매를 할 수 있게 했고, 실거주 의무를 없앴고, 큰 평형의 중도금 대출 길도 열어줬다. 결국 웃는 건 건설사들이다. 워낙 대규모 단지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미분양이 더 쌓이면 건설업계만큼이나 정부도 애가 탈 것이다. 언제까지 미분양 매입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취약계층에 다시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한 마당이다.

물론 최악의 상황이 되면, 정부가 나서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자구노력도 없는 건설사 미분양 물량을 원가보다 비싸게 매입해주는 건 곤란하다. 시장 예측을 잘못했으면, 건설사 스스로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는가. ‘건설사들은 좋겠다’는 시장의 냉소를 없애는 건 정부 몫이다.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