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떠나도 고양이는 남는다... 재개발 지역의 그늘

입력
2023.0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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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 있는 기회라도 주고 싶다"는 케어테이커의 노력 
영역 동물인 고양이, 건물 무너져도 안으로 되돌아와
지자체-조합-시행사-주민의 협력 없이 구조는 불가능

사람은 떠나갔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있다. 해당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온 동네고양이들이다. 재개발로 철거 공사가 시작돼 건물이 부서져도 고양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안쪽으로 들어가 숨는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본능이 있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네고양이를 돌보는 케어테이커들은 고양이 '밥자리'를 이동시키고, 이동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예 다른 곳으로 '이주방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고양이들은 기막히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케어테이커들이 한 마리의 고양이라도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재개발 지역에서 고양이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흑석동 재개발 고양이 어쩌나

서울 동작구 재건축 아파트 단지 흑석9구역은 밤이 되면 어둠만이 깔린다. 이곳은 4월 철거를 앞두고 주민 대부분이 이주를 마쳤다. 문제는 9구역과 마찬가지로 철거를 앞둔 11구역에 사는 고양이들이다. 케어테이커들은 이 지역 고양이를 200여 마리로 추산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케어테이커로 활동하며 재개발 고양이 보호소인 '모락모락 쉼터'를 운영하는 이승희씨는 "두 구역 밖은 도로로 이어져 고양이들이 찻길사고를 당할 수 있다"며 "(고양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사장 펜스 밑의) 생태통로를 내고, 밥자리를 이동시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이들을 돌볼 공간 마련을 위해 동작구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동작구청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지난주 시행사와 9구역 내 빈집을 고양이 임시보호소로 활용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곳에 생태통로를 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재개발 지역 주변에 산이 있다"며 "생태통로 설치나 이주방사 시 이곳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동작구는 9일 케어테이커, 지역 동물단체와 회의를 열고, 해결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하지만 고양이 포획부터 치료, 방사는 모두 케어테이커의 몫이다. 또한 케어테이커들은 보호소 설치를 바라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보호소 개소도 어렵지만 운영에 필요한 비용, 인력 등 자원은 케어테이커들이 짊어져야 한다. 또 정작 고양이들이 보호소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봐야 한다.

재개발지 돌봄센터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

지난해 9월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는 재개발 지역 고양이를 위한 쉼터 '길동무'가 문을 열었다. '길고양이 동무'라는 뜻을 담은 이곳은 재개발 현장에서 구조된 고양이들 중 중성화 수술 후 회복이 필요하거나, 아픈 고양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30여 마리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

이는 박승원 광명시장의 의지와 지역 활동 단체 '광명길고양이친구들'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지영 광명길고양이친구들 대표는 "1년 반에 걸쳐 일부 밥자리를 주택가나 산 쪽으로 옮겼고,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 80마리 정도는 입양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단체와 봉사자들이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는 300마리가 넘는다.

하지만 민간단체가 해당 지역 고양이를 구조해 치료하고 입양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단체와 시민들이 광명시 측에 쉼터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고, 시는 앞으로 10년 이상 순차적으로 재개발이 진행되는 것을 고려해 쉼터를 개소했다. 광명시 관계자는 "앞으로 수천 세대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고양이를 위한 쉼터는 불가피해 보였다"며 "조합과 건설사의 협조, 동물단체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2019년 부산 동래구 온천4구역 재개발 현장도 민관이 힘을 합쳐 재개발 지역 고양이를 구조한 사례로 꼽힌다. 케어테이커로 구성된 '온천냥이구조단'이 고양이를 구조하면 지자체에서 중성화 사업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2019년 4월~2020년 7월 총 320마리를 구조해 176마리는 안전한 곳에 풀어주고, 80마리는 입양 보냈다. 현재까지 고양이 보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세진씨는 "나이가 많거나 아픈 고양이의 병원비 모금과 동네고양이 인식개선을 위해 온천냥이행복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며 "현재 시민들의 모금으로 10마리 정도 수용 가능한 쉼터를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재개발 지역 고양이 구조 시범사업 해보니

서울시의 도시정비사업 추진 구역은 지난해 1월 기준 517곳에 달한다.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들의 피해가 커지고, 민원이 제기되면서 서울시는 2020년부터 동물권행동 카라와 '도시정비구역 동물보호 사업'을 진행해 9개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 중성화와 이주를 도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 차원의 재개발 지역 지원은 중단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개발 구역의 관리감독을 자치구에서 하는 만큼 해당 사업을 자치구에서 지원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치구별로 재개발 지역 고양이 지원을 위한 예산이나 지원책을 마련한 곳은 거의 없다. 케어테이커와 동물단체는 조례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와 부산시, 경기도에는 '도시정비촉진지구 내 길고양이 보호와 구조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동물 보호를 위한 조례가 있지만 권고 수준에 그쳐 실효성은 없다.

김정아 카라 활동가는 "조례에 정비구역 내 동물보호를 위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며 "각 지자체도 관련 예산 확보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 이주를 도왔던 고양이 잡지 '매거진 탁' 김포도 편집장도 "시민이 주체가 되더라도 공공분야의 지원은 필수"라며 "지자체는 조례 개정을 통해 조합이나 시행사가 협조할 근거를 마련하고, 직접적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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