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퐁니·퐁넛 사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응우옌 티탄(63)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배상금 3,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응우옌씨 측 주장을 종합하면 1968년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퐁넛 마을에선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에 의해 비무장 민간인 74명이 학살당했다. 당시 여덟 살이었던 응우옌씨는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자신도 복부에 총격을 입었다며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금 3,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베트남군이 한국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고, 게릴라전 특성상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전 군인과 목격자들은 법정에서 일관되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증언했다. 특히 당시 청룡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류진성씨는 2021년 11월 "다른 소대원들이 중대장에게 민간인들을 어떻게 할지 물어봤더니 중대장이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고 진술했다.
박 부장판사는 "각종 증거와 증언 등에 따르면 한국군이 마을 주민들을 한곳에 강제로 모이게 한 뒤 총으로 사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박 부장판사는 "해병 군인들이 작전 중 총으로 위협하며 원고 가족들을 나오게 한 뒤 현장에서 총격을 가했고, 원고의 이모와 남동생, 언니 등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원고와 오빠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인권침해의 불법성, 피해 내용과 정도, 50년 이상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000만 원으로 정했다"고 밝히면서도, 응우옌씨가 3,000만 원의 배상금을 청구한 점을 고려해 이에 상응하는 액수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베트남 체류 중인 응우옌씨는 이날 선고 직후 법률대리인을 통해 보낸 영상에서 "(학살 사건의) 영혼들도 이제 안식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쁘다"며 "재판장님과 저와 함께 해준 변호인단, 한국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응우옌씨는 지난해 8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국회 기자회견에도 참석해 한국 정부의 책임 인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응우옌씨는 당시 "저는 한국의 참전군인들을 용서하고 싶고, 한국 정부의 사과를 받고 싶으며 그러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며 "퐁니·퐁넛 학살 사건을 출발점으로 한국 정부가 광범위한 학살의 전모를 밝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호소했다. 국방부는 이날 판결에 대해 “관련 기관 협의를 통해 후속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