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여기서 짐 부치고 홀가분하게 몸만 가면 됐는데….”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해외 출장이 잦아 30년 가까이 공항터미널을 이용한 김양원(58)씨가 아쉬운 표정으로 짐 가방 12개를 가득 실은 이동 카트를 바라봤다. 지난달 4일부터 수하물 위탁 등 이곳의 체크인 서비스가 종료된 탓이다. 현재 공항 리무진 버스만 운영 중이다. 리무진을 기다리던 김씨는 “이제 이 많은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공항까지 가야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삼성동 공항터미널이 문을 닫은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예상대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사업차 연간 두세 번 한국을 찾는다는 미국인 브루스 리(42)씨도 “기념품을 많이 사서 캐리어가 6개나 된다”며 “간편하게 수속을 마치던 시절이 그립다”고 푸념했다.
이곳은 1990년 문을 열었다. 도심공항터미널로는 국내 최초였다. 개관 후 최대 17개 항공사의 체크인 서비스를 제공했고, 터미널 건물 1~3층엔 환전소와 약국, 카페 등 10여 개 가게가 입점해 이용객들의 편의를 도왔다. 도심 한복판에서 탑승 수속을 마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에도 하루 평균 이용자가 1,000명은 족히 넘었다.
그러나 공항터미널이라고 감염병의 파고를 비껴갈 순 없었다. 하늘길이 막히자 그해 4월부터 운영을 무기한 중단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일상 회복의 조짐이 뚜렷해지자 터미널 문도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가 무르익었다. 실제 공항터미널 운영사인 한국도심공항자산관리는 지난해부터 국토교통부와 강남구, 대한항공 등과 대책 회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화한 수익성을 회복할 해법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고, 결국 작년 말 국토부에 폐업 신고를 했다.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강남구청은 지난해 10, 11월 운영 재개 서명운동을 진행해 6만5,000여 명의 동의를 받아냈으나, 폐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누적 적자 외에도 감염병 시대를 지나며 비대면에 익숙해진 승객들이 대부분 모바일을 활용해 체크인을 하는 등 바뀐 수속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강남구 관계자는 “운영사에 수요 회복 추이를 지켜보고 폐쇄해도 늦지 않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빈 시설물 활용 방안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날벼락을 맞은 입점 상인들도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건물 1층에서 수하물ㆍ선물 포장 가게를 운영하는 이충진(63)씨는 “지난 3년 동안 한 달에 열흘을 공쳐도 터미널이 다시 운영될 거라 믿으며 버텼다”면서 “폐쇄가 결정된 뒤로는 그나마 있던 손님도 찾지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상인들은 운영사 측의 미흡한 소통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건물 2층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은경(54)씨는 “2020년 4월 운영이 중단된 후 ‘6개월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폐쇄를 미리 알렸으면 대책이라도 세웠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같은 층 카페 관계자도 “일방적 통보에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이제 국내엔 서울역과 광명역 두 곳의 도심공항터미널만 남았다. 광명역도 체크인 서비스는 중단한 채 리무진만 운영 중이다. 서울역 공항터미널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4개 항공사의 체크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