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즐겨 먹는 고기만두와 소시지, 아 막내가 좋아하는 복숭아 요구르트도 빼야겠네요.”
경기 화성시에서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운영하는 임채연 시설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의 손에는 지난해 2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당시만 해도 12만 원이면 양파와 볶음탕용 닭, 오이, 불고기 등 20종류의 식료품을 양껏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돈이면 5, 6개 품목은 빼야 한다. 치솟은 물가 탓이다. 임 시설장은 2일 “계산해보니 1년 전이랑 똑같이 사려면 3만 원은 족히 더 든다”면서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룹홈은 경제적 사유나 가정해체, 방임, 학대 등으로 가정과 분리된 아동에게 돌봄ㆍ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동복지시설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아동들의 의식주는 물론, 학원ㆍ의료비까지 책임져야 해 떨어질 줄 모르는 물가가 더 뼈아프다. 그룹홈에서 오랜 기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3년 전부터 직접 운영 중인 임 시설장은 “형편이 좋았던 적은 없었으나 요즘처럼 힘들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룹홈은 정부 지원금을 기초로 살림을 꾸린다. 운영비는 매월 47만 원, 생계비는 아동 1명당 63만 원씩이다. 화성시의 경우 학원비와 주거비는 아동 1명당 매월 20만 원, 15만 원씩 각각 책정돼 있다. 운영비와 생계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기준이 정해진다. 지난해 대비 운영비는 약 12만 원, 생계비는 1인당 약 4만 원 올랐다. 임 시설장의 그룹홈에서 3명의 남자 아이가 지내니 월 생활비가 24만 원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최근 공공요금과 생활물가 인상분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곳만 해도 1월 관리비가 85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2만 원)보다 35% 급증했다. 28만 원에서 47만 원으로 두 배나 뛴 난방비는 더 골칫거리다. 곧 고지될 2월 요금 걱정에 임 시설장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식비를 대는 것도 버겁다. 특히 지금 같은 방학 기간엔 세 끼를 모두 챙겨야 해 부담이 훨씬 크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장을 보는데 마트 가기가 겁난다”며 “외식비도 만만찮아 이따금 시켜주는 갈비 회식 횟수를 줄여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학원비는 수학 학원 한 곳(월 30만 원)만 보내기에도 부족하고, 주거비 역시 20만 원이나 오른 임대료를 충당하기엔 어림도 없다. 외부 도움을 받으려 각종 사회복지기관에 매일 제안서를 넣어 봐도 미끄러지기 일쑤다. 사정이 이러니 시설장이 다달이 50만~100만 원의 사비를 털어 생활비에 보태는 경우가 흔하다.
정부 지원금 외에 기타 지원금이 지방자치단체 재정 형편에 따라 들쭉날쭉한 점도 문제다. 현재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소속으로 운영 중인 그룹홈은 전국 447개소다. 화성에서는 연 200만 원의 냉ㆍ난방비가 지급되지만, 아예 없는 곳도 허다하다. 임 시설장은 “재정이 열악한 지역의 그룹홈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해법의 핵심은 운영비ㆍ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지자체별 지원금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이재욱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기획팀장은 “부족한 운영비를 생계비에서 끌어다 쓰고, 물가 폭등에 생활도 안 되니 후원금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소외된 모든 아동이 고른 생활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