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쩌다 '식인종'이 되었나

입력
2023.02.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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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먹어 치우는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신간 '좌파의 길'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노여움을 산 에리식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을 경멸한다며 데메테르가 아끼던 나무를 베어버린 테살리아의 왕 에리식톤은 기아의 신으로부터 영원한 식탐이라는 저주를 받는다. 그는 딸까지 노예로 팔아넘기며 사들인 음식을 먹어치우다 못해 자신의 몸까지 모조리 뜯어먹다가 결국 치아만 남는다.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를 '식인 자본주의'로 재정의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상품화된 가치만을 확장하느라 정작 사회를 받치는 데 필수적인 공적 요소까지 해치우며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마치 자기 존재의 토대조차 집어삼키는 에리식톤처럼 말이다.

이 재정의는 구조적 불의의 원인이 자본주의하의 경제 시스템 내부뿐만 아니라, 경제를 존립하게 하는 비경제적 분야 곳곳에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그간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지목한 건 자본가와 노동자 두 계급 간에 작동하는 '착취'였다. 반면 저자는 노동자라는 지위조차 얻지 못한 식민지 예속민・노예・원주민의 무임금 노동으로까지 시야를 넓혀, 착취뿐만 아니라 '수탈'까지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꼽는다.

이외에도 저자는 여성을 억압해 돌봄노동력을 착취하고, 우리 사회의 몸이나 다름없는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등 식인 자본주의가 벌여온 행태를 연이어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 구조적인 '폭식증'의 치유법으로 다시금 사회주의를 꺼내든다. 물론 사회주의 역시 전통적으로 경제주의에 집중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지구 온난화 등 더 넓은 담론을 다뤄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