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시청 중, 줄파르한 오스만을 기억하자'.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말레이시아로 이렇게 쓴 글이 여럿 올라왔다. 배경은 이랬다. 오스만은 학교 폭력(학폭) 피해자다. 우투산 말레이시아와 베리타 하리안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공학도였던 그는 2017년 5월 국방대학교 해병사관후보생 기숙사에서 증기다리미로 괴롭힘을 당했다. '악마'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18명의 학생이었다. 가해자들은 오스만이 기숙사에서 노트북을 훔쳤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그를 집단으로 고문하고 폭행했다. 오스만의 몸과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6월 1일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였다.
부검 결과, 오스만의 가슴과 팔, 다리 등에선 90개의 화상 흔적이 발견됐다. 말레이시아는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고, 법원은 2021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와 살인 방조죄 등으로 6명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하는 등 18명에게 중형을 내렸다. 넷플릭스로 '더 글로리'를 본 말레이시아 시청자들은 가해자들이 동은이의 몸 곳곳을 전기 다리마와 고데기로 지지는 장면을 보고 '오스만의 비극'을 떠올렸다. 온라인엔 "드라마를 보고 울면서 오스만이 생각났다" "고인을 알지 못해도 옷을 다릴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는데 '더 글로리'가 다시 오스만을 얘기한다" 등의 글이 잇따랐다. 학폭의 잔인함과 그 폐해를 잊지 말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오스만의 어머니는 지난달 30일 SNS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란 글과 함께 생전 그의 아들과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사진 속 오스만은 해군사관생도의 흰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더 글로리'가 공개된 당일이었다. '더 글로리'는 공개 후 지금까지 줄곧 말레이시아 넷플릭스에서 톱10(플릭스패트롤)에 올랐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촬영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더 글로리'가 학교 폭력을 핍진하게 그려내면서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의 메시지가 퍼져나간 셈이다.
이처럼 '더 글로리'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비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태국에선 'Thai The Glory'란 해시태그를 달고 부패한 특권층의 학폭을 고발하는 움직임에 이어 학폭 연예인(파왓 칫사왕디)이 참여하는 행사 보이콧까지 이뤄지는 분위기다. 아시아의 여러 한류 커뮤니티에선 현지인들이 자국 내 학폭 문제를 거론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얀마의 한 커뮤니티엔 "10학년 때 학폭을 당했다. 사육당하는 기분이었다" "간식값을 주고 숙제를 해줬다. 교사들이 학폭을 믿어주지 않을 때 더 힘들다. 가난하면 교사들의 차별을 받는다"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최우성 경기 수원교육지원청 학교폭력 전담 장학사는 본보 통화에서 "'더 글로리' 속 동은의 모습은 2006년 청주의 중학교에서 한 여학생을 상대로 동급생들이 20일 동안 고데기 등으로 상해를 입힌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며 "가해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흉폭해져 학폭 예방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