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각 가정의 난방비가 지난해보다 40%가량 오르면서 불만이 커지자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가스요금을 올린 배경을 설명했다. 가스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폭등해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큰 폭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해외서 가스값은 내리고 있어 애초 국내 가스 시장 구조가 요금 인상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2021년 하반기부터 올라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2021년 1분기 대비 최대 10배 이상 뛰었다. 비록 도시가스요금을 인상했지만 지난해 4분기 한국가스공사가 받지 못해 적자로 쌓인 미수금이 9조 원에 달했다.
산업부는 같은 기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요금을 많이 올린 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2021년 1월~지난해 10월 국내 주택용 가스요금은 메가줄(MJ·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4.22원에서 19.69원으로 오른 반면 미국은 10.4원에서 33.1원, 영국은 16.3원에서 최대 68.2원, 독일은 23.4원에서 최대 91.8원으로 올랐다.
문제는 최근 국제 가스값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국내 가스요금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투자정보제공 전문사이트 인베스팅닷컴의 한‧일 가스 현물가격(JKM)을 보면 25일 기준 100만BTU(열량단위‧BTU당 25만kcal)당 20.9달러로 지난해 8월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겨울철을 맞은 유럽이 온난화 영향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가격(2월 17일 24.5달러)보다 낮다. 더구나 에너지 시장에서 '석유=소주, 가스=막걸리'에 비유될 정도로 가스의 보관 가능 기간은 짧다. 가스가 휘발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축을 짧게 할수록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제 가스 가격 폭등을 이유로 가스요금을 크게 올린 이유가 뭘까.
유럽의 '사재기'를 미리 대응하려고 지난해 하반기 정부 비축량을 늘린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제 가스 가격이 100만BTU당 20달러(5월 17일‧JKM 기준)에서 40달러(7월 26일)로 치솟았을 무렵, 정부 가스 비축량이 10일 치(138만 톤‧6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나오며 관계 기관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10월 국회에서도 이런 부분이 지적을 받았다.
정부가 겨울을 앞두고 가스 비축량을 늘렸는데 결과적으로 비싼 시기에 많이 사둔 꼴이 된 셈이다. 유럽 각국이 가스 상한제를 논의하며 러시아와 신경전을 벌인 8월 말, 여러 나라가 가스 확보 경쟁에 들어갔고 국제 가스 가격은 100만BTU당 69달러까지 치솟았다. 가스 가격은 이후에도 한동안 40~50달러 선을 오갔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의 가스 비축량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대외비"라면서도 "아주 넉넉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8월에 계약해도 가스 현물이 들어오는 건 겨울 앞둔 10월말부터"라며 "인도 당시 현물가를 기준으로 지불하기 때문에 최고가를 기록한 8월에 겨울용 가스를 비축한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제 가스 가격이 국내 가스요금에 영향을 주는 건 비축분을 다 쓴 봄 이후가 될 것"이라며 "늘고 있는 가스공사 미수금을 줄이려면 요금은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이번 겨울이 지나면 가스공사 미수금이 5조원 가량 더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정부가 1,2월에도 계속 가스를 수입하고 있는만큼 현재 비축분 만으로 겨울을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박덕열 가스산업과장)고 반박했다. 무리할 정도로 많이 산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정부가 장기 거래처를 통해 2, 3개월 전 가격으로 가스를 들여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산업부의 다른 관계자는 "국내 가스 수입량의 70%는 일본원유수입가(JCC)에 연동해 장기 거래한다"며 "보통 2, 3개월 후 낼 가스 가격을 미리 정하고 수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재 들여오는 가스 가격은 지난해 9월, 10월 JCC를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JCC는 2022년 1월 배럴당 79.69달러에서 4월 108.18달러, 6월 116.38달러로 급증했고 10월에서야 106.03달러, 11월 100.38달러로 떨어졌다.
정부는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날 이창양 장관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에너지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수급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며 2분기 가스요금 인상을 시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가입국들의 가스 재고 축적률은 1일 기준 83.5%에 달한다. 말 그대로 에너지가 '안보' 영역이 되면서 나라마다 천연가스를 채워 넣을 수 있는 곳에는 가득 넣어둔 셈이다.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증명'되기 전인 11월 중순 EU의 가스 재고 축적률은 95%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