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 선배가 한 분 계신데, 그가 봄부터 하던 말이 있다.
"눈 오면 희삼집 가서 토끼탕을 먹세."
희삼집은 전북 정읍에 있는 작은 식당이다.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날, 저 구석자리에 있는 허름한 대폿집 같은 희삼집에는 나이 든 사내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마침 그 동네에 눈이 많이 왔는데 가지 못했다. 선배가 "주인네가 연세가 들어 언제까지 할지 모르니 얼른 다녀오자"고 했던 집인데 올해를 또 넘겨버릴 것 같다. 내가 알기론 희삼집이란 별스러운 이름은 주인의 함자에서 왔다고 한다. 그 탕이 별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옛날을 요리하는 집은 가봐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인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눈 오는 호남 땅을 생각하면 저 반도의 끝 고흥 땅이 떠오른다. 이름도 정겨운 고흥 도라지식당에서 먹었던 노랑가오리도 잊을 수 없다. 가오리이되, 피부색이 달라 노랑가오리다. 노란빛이 도는데, 정작 내가 붙인 이름은 호랑이가오리다. 껍질을 벗기면 붉은 줄무늬 같은 반점 띠가 층층이 아로새겨져 마치 호랑이처럼 느껴진다. 이놈의 제철이 겨울인 건 곁들이는 김치 때문이다. 겨우 담그거나 어디서 정체도 없는 김치를 사들여 내는 게 대부분 식당의 현실인데, 이 집은 오묘하게 삭은 겨울 김장을 내주던 것이었다. 이런 김치를 받아들면, 당최 밥장사하는 집에서 헤프기 그지없을 이 많은 김장을 어떻게 담갔을까 삼가 경외감까지 들게 된다. 서울에선 저장할 공간도 없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김치가 구박덩이인데 그래도 저 먼 동네로 가면 진짜 김치를 낸다. 떠나려는데 할머니가 다 된 주인장의 전송은 또 얼마나 구성지던지.
고흥에서 나로도는 또 먼 땅이다. 우주기지가 있다는 건 땅값이 싸고 인적이 적다는 뜻이다. 한센인의 아픔이 담긴 소록도를 탐방하고 나로도로 오니, 식당도 별로 없는 골목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우리 일행이 가게 안에 들어서도 안 판다는 할머니가 야속했는데, 서울에서 하는 식으로 그저 뻗대어보니 대답이 이랬다.
"여기는 객이 없어서 미리 준비를 안 해요. 대접을 못항게 못 받어요."
대충 차려낼 수 없어서 예약 안 한 손님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찬이나 달라고 해서 겨우 앉았는데, 먼저 온 손님이라고는 딱 한 명이었다. 그는 나로도 우주센터의 직원이었고, 이 식당에서 저녁밥을 대어 먹는 손님이었다. 돈도 안 될, 혼자 다니는 밥손님에게 그 주인이 얼마나 정성이던지 옆에 앉아서 샘이 났다.
"아들 같응게 밥을 합니다."
먼 데 떠나서 객지밥 먹는 아들을 두었으니, 그런 처지의 독신 손님에게도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었다. 그 할머니가 썰어내는 삼치회에 소주를 마시다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할머니 요리사들 지병은 한두 개가 아니지만 대개 근골격계에 큰 병이 있다. 어려서부터 쪼그리고 밭 매고 부엌일하면 숙명처럼 허리와 관절이 망가진다. 그 주인할머니의 허리를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해놓고는 아차 싶었다. 칠십 넘는 세월을 저렇게 일해왔는데 내가 뭐라고 이제 와서 허리 보존할 자세 같은 걸 알려드린단 말인가.
눈이 오고 혹한이 몰아치니 희삼집을 돌아 고흥에 다시 가고 싶다. 저 노장 요리사들이 아직 칼을 잡고 있을까. 그만두셨달까봐 두려워서 전화도 못 걸어보겠다. 나로도의 그 식당 이름은 '먹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