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는 '생활툰'(생활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을 합친 말)에 많은 이가 공감하며 위로받는다. 이 가운데서도 반려동물 이야기를 그려내는 웹툰은 '동물툰'이라는 장르까지 탄생시키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두 고양이와의 동거 이야기를 담은 '탐묘인간'으로 잘 알려진 순(SOON) 작가는 동물툰 1세대로 꼽힌다. 그는 2011년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고양이를 주제로 한 웹툰을 그리고 있다. 그는 2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 반려묘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웹툰을 시작했다"며 "그때그때 느끼는 기쁨은 함께 나누고 어려움이나 슬픔은 기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을 소개해 달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탐묘인간', 네이버 동그람이에서 '우리집 묘르신'을 완결했다. 지금은 동그람이 웹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무지개다리 우체국'을 연재 중이다. '탐묘인간'이 반려묘와 함께 사는 것을 다뤘다면 '우리집 묘르신'은 두 반려묘의 나이듦과 죽음, '무지개다리 우체국'은 반려묘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 또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펫로스)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툰 작가가 된 계기는.
"2004년 동네에서 이사 가면서 버려진 고양이 '미유'를 우연히 데려왔다. 대학 휴학 중이었는데 미유를 보며 느꼈던 감정, 또 미유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웹툰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박스에 담긴 채 공원에 버려진 고양이 '앵두'를 입양했다. 2006년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두 고양이의 이야기를 담아 블로그에 '탐묘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웹툰을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2011년부터 포털사이트에 정식 연재하게 됐다."
-그간 작업환경 등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웹사이트보다 SNS에 연재할 때 독자들의 반응이 더 활발하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아서인 것 같다.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SNS에서 연재를 시작해 출판사나 포털사이트와 계약하게 되는 경우도 이젠 흔하다. 지금 연재 중인 '무지개다리 우체국'도 아예 SNS 형식에 맞춰 작업 중이다. 담을 수 있는 분량이 10컷으로 제한되므로 이 분량에 맞춰 에피소드를 끝내거나, 두세 번으로 나눠 편집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독자들의 반응도 달라졌을 것 같다.
"연재 시작할 때보다 지금 독자들이 동물권에 더 민감한 것 같다. 예전에는 '애완동물인데 왜 반려동물로 부르냐', '반려동물 죽었다고 그렇게까지 하냐'는 등의 의견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독자는 찾기 어렵다. 또 품종묘나 펫숍 문제에도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이 기준으로 지난 작업들을 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다. 예컨대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했던 행동이 지금 보면 반려묘들에게는 위협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작업 시 콩테 연필을 유지하는 점도 특이하다.
"콩테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스캔을 한 다음 포토샵을 통해 색을 입히는 과정을 거친다. 태블릿에 그리면 수정도 쉽지만 콩테로 그린 스케치는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해야 하니 그만큼 작업량이 많다. 좋은 디지털 도구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콩테 연필이 아니면 현 그림체에 맞는 느낌을 내기 힘들다."
-'무지개다리 우체국'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데.
"미유에 이어 앵두까지 1년 만에 둘을 보내고 나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관련 자료나 서적, 다른 이들과의 소통창구를 찾아봤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치유모임이나 전문상담기관도 수도권에 몰려 있다. 펫로스의 치유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또 이 웹툰을 통해 같은 슬픔을 겪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내용을 웹툰에 공개했다. 힘든데 병원에 가지 않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나를 포함해 다른 분들도 많이 병원을 찾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참는다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또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독자들로부터 사연을 받아 각색한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같은 아픔을 겪은 독자들과의 소통이 내겐 큰 위로와 치유가 됐다."
-지금까지 그린 웹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탐묘인간' 중에서는 '임금님의 고양이'다. 조선시대 숙종과 그가 아끼던 고양이 금손이에 관한 에피소드였는데 정말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다. (이 에피소드는 이익의 성호사설 만물권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김시민의 금묘가를 참고했다.) '우리집 묘르신'은 미유와 앵두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그대로 담아 지금도 다시 읽기 힘들다. 앵두를 보낸 에피소드에 한 독자가 '누군가를 상실한 슬픔은 처음엔 바위와 같다가 시간이 지나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돌이 된다. 하지만 그 돌은 영원히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아주었다. 언젠가 이 슬픔이 작아진다는 것, 하지만 영원히 남는다는 것이 당시 많은 위로가 됐다."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작가로서 '가늘고 길게'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점은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웹툰 작가들은 수익이 많이 나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비결은.
"미유와 앵두 덕이다. 고양이들과 같이 살면서 웹툰이 시작됐고, 그들이 나이 먹는 과정이 또 다른 에피소드가 됐다. 둘을 데려온 2000년대 초반은 반려동물을 많이 기르기 시작한 때였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과 살면서 비슷한 시기를 겪은 독자들에게서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댓글을 보면 '저도 똑같았다'거나 '비슷한 생각이다'라는 반응이 유독 많다."
미대 출신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도 많다. 작업 도구들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그림 실력보다 더 중요한 건 시나리오다. 요즘은 글을 쓰는 스토리 작가, 중간 그림 작업을 하는 콘티 작가, 채색 작가 등 웹툰 작업이 분업화되어 있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분야별로 다르겠지만 생활툰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웹툰은 회당 70~80컷이기 때문에 혼자 하기엔 벅차다. 이 때문에 웹툰은 작가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팀플레이의 결과물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창작물이 있다면 가장 먼저 포털사이트 아마추어 게시판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 이 코너에서 인기를 얻으면 포털사이트에 정식 연재할 수도 있고, 다른 관계자들의 눈에 띌 수도 있다. 이외에 공모전을 통해 데뷔하거나 웹툰 플랫폼에 직접 투고하는 방법도 있다. 또 본인의 SNS에 올려 입소문을 탈 수도 있다.
다른 웹툰도 마찬가지겠지만 동물툰의 경우 평소 관찰력을 기르는 작업을 많이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소재가 되고 한 에피소드가 된다.
도움말: 순(SOON)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