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음식물쓰레기 스타트업 창업자 "한국 처리 방식서 큰 영감 얻어"

입력
2023.01.26 04:30
23면
스타트업 '밀' 태넌바움 대표 인터뷰
전용 쓰레기통에 보관해 닭사료로 가공


13억 톤. 한국 연간 쌀 생산량(지난해 376만 톤)의 345배.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연간 생산되는 음식물 3분의 1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된다. 매립지로 간 음식물 쓰레기는 처리 과정에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메탄가스, 이산화탄소 등을 배출하는데, 이는 전체 온실가스의 8~10%를 차지한다.

압도적인 '쓰레기 최대 배출국' 미국은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국가다. 한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수거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분리 배출 의무가 없는 미국에선 대부분이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통에 버린다. 기후위기 극복에 가장 적극적인 캘리포니아조차 음식물 쓰레기를 다른 쓰레기와 분리해 배출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난해 초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식당, 호텔 등만 해당된다.

쓰레기 대국에서 꽃 핀 혁신

약 4년 전,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를 우연히 접한 해리 태넌바움은 충격에 빠졌다. 그는 "우리가 재배한 식량의 거의 40%를 버리고, 그 쓰레기 절반 이상이 가정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평균적인 미국인 한 명은 1년에 약 272㎏의 음식물을 버린다고 해요. 금액으로 치면 2,000달러(약 246만 원) 정도인데,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도 큰 문제죠."
(스타트업 '밀'의 창업자 해리 태넌바움)

그 뒤 음식물 쓰레기 문제 해결에 몰두한 태넌바움은 과거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매튜 로저스와 함께 2020년 스타트업 '밀'(Mill)을 설립했다.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이를 닭 사료로 바꿔주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밀은 이달 17일 서비스 첫 공개와 동시에 회원 가입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전에 이미 구글 벤처스 등 유명 벤처투자사로부터 1억 달러(약 1,230억 원)가 넘는 투자를 받았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트업 중 하나로 꼽히는 밀. 이 회사를 이끄는 태넌바움 대표는 24일(현지시간) 한국일보와 만나 "음식물 쓰레기를 매립하지 않는 한국은 큰 영감을 준 나라"라며 "변화에 대한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가정 내 쓰레기통에서 1차 가공

공동 창업자 태넌바움과 로저스는 스마트홈 기기 제조업체 '네스트'(Nest) 출신이다. 로저스가 세운 첫 스타트업이었던 네스트는 2015년 구글에 인수됐다. 인수 금액은 32억 달러(당시 기준 3조5,000억 원), 구글의 인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모토로라에 이은 2위 규모였다. 두 사람은 매각 후 구글에서 일하다 2020년 전후 나란히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해 다시 뭉쳤다.

밀의 음식물 쓰레기 관리 시스템은 자체 개발한 쓰레기통이 핵심이다. 최저 33달러(4만 원)의 월 이용료를 내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부엌에 놓고 쓰는 음식물 전용 쓰레기통을 받는다. 겉보기엔 일반 쓰레기통과 다를 게 없지만, 음식물을 넣으면 밤새 말리고, 갈고, 탈취한다. 과일 껍질, 채소뿐 아니라 닭이나 생선의 작은 뼈까지 넣을 수 있다. 쓰레기통은 와이파이로 밀의 서버와 연동돼 있어, 쓰레기통이 어느 정도 차면 자동으로 집에 박스가 배송된다. 평균적으로 3, 4주에 한 번이다.

여기에 쓰레기통 내용물을 넣어 집 앞에 내놓으면 밀 측이 수거해간 뒤 플라스틱, 금속 같은 먹을 수 없는 것들을 걸러내고 정제해 양계장으로 보낸다. 태넌바움은 "지구를 위해 뭔가를 하려는 동기가 있는 사람들만 가입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악취 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초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하필 닭사료여야만 했나?

남은 음식물을 재활용하는 서비스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밀이 다른 점은 '가정'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란 것이다. 기업, 식당 등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보다 수요 확대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집 안을 먼저 공략하는 건 "가장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라고 태넌바움은 말했다.

다양한 가축 중에서도 닭의 사료를 만들기로 한 데도 역시 이유가 있다. 소, 돼지, 양보다 닭이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적기 때문이다. 태넌바움은 "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은 토마토, 생선보다도 적다"며 "기후 영향 관점에서 닭 사료를 만드는 게 더 지속가능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밀은 향후 이용자들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매달 음식물을 얼마나 버렸는지, 이용자 평균과 비교했을 땐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태넌바움은 "(가정 자동화 업체인) 네스트 시절 온도조절기 이용자들에게 전달 대비, 전국 평균 대비 냉난방을 얼마나 했는지 등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냈더니 전기를 더 절약하더라"며 "밀의 앱 역시 자신이 실제로 쓰레기를 얼마나 만들어내고 있는지 인지하고, 행동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태넌바움은 "이미 우리는 음식물 낭비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럼에도 음식물 쓰레기 문제와 기후문제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올해 밀의 가장 큰 목표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최대한 알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이 올해 테크업계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 예측하며 "단 하나의 해결책만 있는 게 아닌 만큼, 다양한 시도가 나와서 (밀과 함께) 경쟁하면 좋겠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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