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스키어’들의 질주 “너른 설원도 달리고, 기부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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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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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니어스키 동호회 OPAS

지난 13일 강원 용평리조트 스키장. 백발이 성성한 60~80대 장노년 선수들이 ‘2023 할배들의 행복나눔 썰매 대회’를 치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2017년 시작돼 올해 4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에는 시니어 스키 클럽 OPAS(Old People with Active Skiing) 회원이 역대 최다인 74명이나 참가, 장ㆍ노년층의 스키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참가자 나이에 따라 △영 시니어(60~64세) △리얼 시니어(65~69세) △슈퍼 시니어(70세 이상) △시니어 레이디스(60세 이상 여성) 등 네 부문으로 나뉘어 입상자에겐 금ㆍ은ㆍ동메달이 수여된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 순위 다툼은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김자호(78) OPAS 회장은 ‘시니어 스키’에 대해 “빨리 가는 스포츠지만 이제는 천천히 즐기는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순위를 가리기는 하지만 턴 및 제어 기술을 정확히 구사하며 천천히 음미하듯 즐기는 게 시니어 스키의 진수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장애물 경기를 하듯 기문을 하나하나 리듬감 있게 회전하면 성취감마저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기술을 사용해 스스로를 제어해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면서 “다른 스포츠는 점수와 승부를 다투지만 시니어 스키는 그렇지 않다. 복잡한 생각 없이 순수하게 즐기는, 스트레스 없는 운동”이라고 시니어 스키를 홍보했다.

국내 스키 인구는 약 550만명, 이 중 60대 이상은 약 10% 정도로 추산된다. 시니어 스키어들은 스키가 확산되던 90년대 전후로 스틱을 잡은 뒤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났지만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스키가 대중에게 보급된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점차 시니어 스키 인구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대회는 특히 최고령 참가자 나이가 만 88세로 고령층 참가자가 더 늘었다. 김 회장은 “나이 순으로 참가자 등번호를 정한다. 나는 지난 대회에서 10번이었는데, 올해는 13번으로 밀렸다”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 해도 추운 날씨에 가파른 설원을 달리는 스키가 노년층에게 어렵거나 위험하지 않을까? 45년차 베테랑 스키어 이기윤(78)씨는 그러나 “90세 할아버지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며 손사래를 쳤다.

먼저, 추운 날씨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라고 한다. 이씨는 “영하 10도 안팎의 스키장은 상대적으로 무균 환경 아니겠느냐”면서 “맑고 찬 공기를 마셔 오히려 호흡기 건강에 이롭다”라고 주장했다. 또 스키는 하체를 많이 사용하는데, 스키를 즐기면 자연스레 하체가 단련돼 다른 스포츠에도 도움을 준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스키를) 겨울에 매일 타면 봄에 골프가 유독 잘 된다. 아마 하체가 탄탄해져 안정적인 스윙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라며 웃었다. 그는 등산, 자전거,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을 즐기는 스포츠 애호가지만 “하얀 눈 속, 설원 위를 질주하는 스키가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스포츠”라고 스키 예찬론을 펼쳤다. 실제로 스키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하고 2022 시니어 기술 선수권대회(60세 이상 부문)에서 우승할 정도로 조예가 깊다.

다만 안정 장비와 철저한 안전수칙은 필수다. 이씨도 △사람 많은 곳 피하기 △스노보드ㆍ스키가 다가오면 무리하지 않고 먼저 보내기 등 주의 사항을 재차 강조했다. 이씨는 “자전거는 쿠션 없는 아스팔트에 넘어지면 충격이 바로 전달돼서 위험하지만, 눈은 쿠션 작용을 하고 미끄럽기 때문에 충격이 완화돼 오히려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스포츠적인 요소에 ‘봉사와 기부’도 더한 것이 “시니어 스포츠의 더 큰 의미”라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OPAS의 경우 클럽 회원, 대회 참가자, 수상자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진행한 뒤 2017년에는 대한장애인스키협회, 2018년부터는 스키안전캠페인을 위해 일정 금액을 기부했다. 스키를 즐기다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안전 수칙 홍보물을 제작하고, 스키 협회 교사들에 대한 안전 교육도 철저히 진행해야 노년층의 스키 저변도 확대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김 회장은 “나이 들수록 더 건강하게 스포츠를 즐기며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면서 “노년층의 사회생활스포츠 저변이 확대되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용평 강주형 기자
용평 전나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