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고금리를 올리겠다'는 금융당국의 계획이 사실상 중단됐다. 최고금리 인상의 필수 관문인 국회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조만간 긴급 생계비 대출을 출시해 돈줄이 막힌 취약계층을 구제하겠다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시장 기능 회복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24일 금융당국·국회 등에 따르면, '최고금리 인상안'을 들고 국회 설득에 나선 금융위원회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대출 중단으로 어려움에 처한 취약계층에 대한 공감대를 일부 얻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높은 대출금리로 서민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최고금리 인상이 '정치적 자책골'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당 중심으로 금융위의 설득 절차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당국의 주요 정책은 여당 정책위의장·담당 상임위 여당 간사와 협의 후 진행되기 마련인데 이 과정이 없었을뿐더러 여당과 협의 없이 야당 의원실을 방문한 것도 빈축을 샀다. 이에 금융위 사무처장이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관계자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을 추진하면서 당정 협의를 생략한 것은 중대한 절차적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당국은 금융권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금융위는 16일 서민금융 현황 점검회의에서 "지난해 4분기부터 저축은행·카드사·대부업 등의 대출 축소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별다른 정책적 수단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민들에 대한 금융창구로서의 역할을 지속해 줄 것"을 당부할 뿐이었다. 그나마 올해 2분기 취약 대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긴급 생계비 대출'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한도가 최대 100만 원에 그쳐 실질적 효과는 미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업계는 여전히 최고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예금금리 인하로 조달금리가 낮아졌다고 하지만, 기준금리가 0.5%인 시절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부업 관계자 역시 "5년 전 대부업 이용자가 200만 명이 넘었는데 최근엔 100만 명까지 축소됐다"며 "사라진 100만 명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본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서민정책금융만으로 모든 취약계층을 흡수할 수 없다"며 "한계에 몰린 취약계층이 대부업에서나마 돈을 빌릴 수 있어야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