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의 대대적 포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양이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지속적인 민원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일각에선 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 불가피하다 해도 준비 없이 무조건적 포획만 해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양이 개체 수 등 기초 조사를 포함해 포획 기준, 포획 후 방안 등을 지역사회와 협의해 마련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20일 정부와 동물단체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로 뿔쇠오리를 포함한 야생조류의 피해가 크다는 민원이 제기돼 뿔쇠오리가 마라도를 찾기 시작하는 2월 전 고양이를 대거 포획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뿔쇠오리는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소형 바닷새로, 학계에서는 국내에 최대 300~400쌍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관계자는 "지난주 문화재청,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주도, 서귀포시 관계자들과 현장 조사를 했다"며 "고양이뿐 아니라 뿔쇠오리 알에 피해를 주는 쥐도 포획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고양이를 포획한 뒤 일부는 입양 보내고 나머지는 제주도, 전남 완도 등 다른 지역 지자체 보호소에 보낸다는 게 문화재청의 당초 계획이었다.
그런데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의 포획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고양이 개체 수를 파악해 어떤 고양이를 몇 마리나 포획할지, 이후 어떻게 처리할지 방안 등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잡고 보는 식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고양이가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게 먼저"라며 "더욱이 국립공원 등에서도 고양이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는데, 이럴 때마다 고양이를 다 없앨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포획을 준비하면서 마라도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케어테이커 등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수의인문학자인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이 문제는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만큼 고양이를 돌보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일방적 포획이 아니라 포획 후 치료, 안락사∙입양∙케어테이커의 돌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이의 포획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이 역시 지역주민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뿔쇠오리를 연구해온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뿔쇠오리 보호를 위해 고양이를 모두 데리고 나오는 게 최선"이라며 "포획을 시작하면서 개체 수 조사 등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모두 포획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사람의 관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들부터 포획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케어테이커 등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문화재청은 이달 중 시행 예정이던 고양이 포획을 일단 중단하고 전문가, 동물단체 등 관계자들과 뿔쇠오리 보호 방안을 논의한 뒤 포획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천연보호구역의 생태계 보전관리 방안 관련 연구용역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마라도에서 고양이를 돌봐온 김정희씨는 "지난해 4월부터 3차례에 걸쳐 100마리에 달하는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며 "현재 서식하는 고양이 수는 70~80마리 정도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김씨는 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지난해 11월부터 사유지 밖의 급식소를 모두 철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