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성 역할의 고정관념이 있고 유리 천장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직업 세계에서는 남녀의 성역이 많은 부분 허물어져 가고 있다. 남성의 영역이라 여겼던 의료 혹은 법률 전문 서비스, 행정, 외교 등 전문 분야에 여성이 대거 진입하였고, 유치원에서 남자 교사들을, 병원 요양원에서 남자 간호사들에게 돌봄을 받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직업과 '군인, 기관사, 해양구조원' 등 체력이 필요한 직업은 기본적으로 남성명사로 인식된다. 그래서 가리키는 대상이 여자일 경우 '여의사, 여변호사, 여교수, 여군' 등 '여' 자를 덧붙인다. 반대로 '간호사, 교사, 도우미' 등은 여성을 기본으로 인식하여 '남(자)' 자를 붙여 성별을 구분한다. 사회는 변화하는데 언어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가정에서의 남녀 역할도 시대적 변화를 겪고 있다. 얼마 전 한 직원이 장모님의 병원 검진에 함께 다녀오기 위해 연가를 낸다는 말을 들었다. 장모님을 위하는 극진한 정성에 칭찬하려는데 '효도하는 사위'를 뜻하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들(효자), 딸(효녀), 며느리(효부), 심지어 손자(효손)를 가리키는 말까지 있는데 효도하는 사위를 가리키는 말은 역시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반대말도 '불효자'와 '불효부'가 있고 '불효녀'까지만 등재되어 있다. 처가와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진 시대인지라 사위와 접할 기회가 잦고 사위를 언급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가 언어에도 반영되어 '효서(孝壻)', '불효서(不孝壻)'가 사전에 등재될 날이 과연 올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