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방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다. 과일을 줄 테니 잠시 나오라고 사정해도 묵묵부답이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부모는 “아들이 잠깐 밥 먹으러 나올 때만 얼굴을 볼 수 있다”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 20대인 A씨는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극심한 좌절감은 그를 방 안에 가뒀다. A씨는 “달라지겠다는 결심도 해봤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털어놨다.
사회와 단절돼 고립ㆍ은둔 상태에 놓인 청년이 서울에서만 1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취업 실패와 심리적 압박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곤궁했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5~12월 서울에 사는 19~39세 청년 5,513명과 청년이 거주 중인 5,221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립ㆍ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시는 정서적ㆍ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인 경우를 ‘고립’으로, 거의 외출 없이 집에서만 지내는 은둔 상태가 6개월 이상이면서 최근 한 달 내 직업ㆍ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를 ‘은둔’으로 규정했다.
조사 결과 고립ㆍ은둔 청년은 4.5%였다. 서울 전체 인구(942만여 명)에 적용하면 최대 12만9,000명으로 추산된다. 전국으로 대상을 넓히면 61만 명 수준이다. 고립ㆍ은둔 청년 55.6%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했다. 은둔 생활이 5년 이상 장기화된 비율도 28.5%로 매우 높았다. 심지어 10년 이상이란 답변도 11.5%에 달했다.
청년들은 ‘실직 또는 취업에 어려움’(45.5%)을 겪으며 스스로 자신을 집에 가뒀다. ‘심리적ㆍ정신적 어려움’(40.9%)과 ‘대인관계 어려움’(40.3%)도 고립ㆍ은둔 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10대 시절 경험한 ‘따돌림’(57.2%)과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57.8%)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불안’(62.1%)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탓에 고립ㆍ은둔 청년 가운데 85.1%는 스스로 경제적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다. 10명 중 8명은 ‘가벼운 수준 이상의 우울’ 증세가 있었다. 정신건강 관련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도 18.5%로 비고립 청년(8.6%)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절반 이상(55.7%)이 일상 복귀를 원했고, 10명 중 4명(43%)은 실제로 고립ㆍ은둔 생활을 벗어나려고 취미활동이나 공부, 일, 병원 치료 등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지자체 차원의 세심한 맞춤형 지원 정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고립ㆍ은둔 청년들은 ‘경제적 지원’(57.2%)과 ‘취미ㆍ운동’(44.7%) ‘일자리ㆍ공부 기회’(42%)를 원했고, 가족들은 ‘고립ㆍ은둔 이해 프로그램’(22.4%)과 ‘가족상담’(22.1%)을 통해 자녀들과 소통하기를 바랐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3월 안에 종합 지원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선 전문병원과 업무협약을 통해 의료 지원 및 치료를 제공하고, 기존 ‘마음건강 지원사업’에 고립ㆍ은둔 청년을 포함시켜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마음건강 비전센터’ 운영도 검토 중이다.
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고립ㆍ은둔 청년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