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관계 여직원 뇌출혈 방치 사망사건... 무죄서 유죄로 뒤집혀

입력
2023.01.18 00:10
뇌출혈 직원 구호조치 없이 집·차량서 방치해
"내연관계 드러나 실추 두려워해 미필적 고의"

자신의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내연관계 여직원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이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법정구속됐다.

대전고법 형사3부(부장 정재오)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8월 16일 오후 11시 20분쯤 세종시 거주지에서 뇌출혈 증세로 의식을 잃은 내연관계 직원 B씨를 7시간 넘게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3시간 후 밖으로 데리고 나왔으며, 다시 4시간 넘게 차량에 태운 채 방치했다가 뒤늦게 병원 응급실에 데려갔지만 B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재판부는 B씨가 쓰러졌을 당시만 해도 자가호흡이 가능해 A씨가 119에 신고했다면 살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A씨 거주지에서 인근 119안전센터까지 5~10분이면 갈 수 있는 1.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B씨를 차량 뒷좌석에 짐처럼 집어던지고, 국토연구원 주차장에 도착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은 것도 모자라,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위장하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사회 상규 등에 따라 119에 갑작스러운 의식 소실 등 피해자 건강 이상을 신고하고 구급대 도착 전까지 119 지시에 따라 조치해 최소한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지만, 이를 하지 않아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A씨는 이런 구호 조치를 하는 데 어떤 장애도 없었으며, 피해자는 기저핵 뇌출혈로 기도를 유지한 채 응급실로 호송했을 경우 목숨을 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이는데 핵심 경과를 방치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는 피해자가 죽을 것을 인식했음에도 내연관계가 드러나 사회적 지위 등이 실추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피해자를 사망하도록 해 미필적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충분하다"며 유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가 깊이 잠들어 자도록 내버려 뒀다는 변명만 하는 등 유족의 분노를 키웠다"며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까지 고려할 때 형사처벌로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구호 조치 의무가 있었다"면서도 "피해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당시 시반이 확인되는 등 사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고,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전=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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