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통한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야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으로 정부에서 검토 중인 '제3자 변제' 방안을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일한협력위원회 합동회의 축사를 통해 "한일관계는 지난 몇 년간 가장 어렵고 깊은 질곡에 빠져 있었으나, 최근 들어 뚜렷하게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은 안보, 경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필요로 하는 가장 가깝고 중요한 이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보았다"며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고 양국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도 이날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건설적 논의를 했다"며 "양국 간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도모하기를 기대하며 긴밀한 의사소통을 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했다.
양국 정상이 강조한 현안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등을 포함한 과거사 문제를 뜻한다. 과거사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할 이유로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따른 한일 및 한미일 간 공조 강화 필요성을 꼽았다.
양국 정상이 조속한 현안 해결을 한목소리로 강조한 만큼 정부도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법 도출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다만 일본 기업의 변제금 조성 참여와 사죄 등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 여부가 불투명해 피해자 측의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현안보고에서도 제3자 변제안이 도마에 올랐다. 조 차관은 '제3자 변제가 정부의 공식 입장이냐'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협의 중인 방안"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일본 기업의 참여 없이 한국 기업이 우선적으로 변제금을 마련하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상희 의원은 "지금까지 일본의 책임을 인정받기 위해 싸워 온 분들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조정식 의원도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만 들이마시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부를 엄호했다. 정진석 의원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뒤따르면 제3자 변제안은 정부 해법으로 발표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제가 볼 때 제3자 변제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이디어와 맥을 같이하고 더는 해법이 없다"고 했다.
조 차관은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정부가 발표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호응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가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인 일본 기업으로부터 직접적인 배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민관협의회에서) 제3자 판결금 지급의 법리로써 제3자 대위변제, 중첩적 채무인수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며 "핵심 원고인 피해자 및 유가족 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수령 의사를 묻고 진실한 설명과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현재 계류 중인 소송도 추후 유사한 방식으로 판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봤다. 국내 강제동원 소송 중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소송은 3건이다. 계류 중인 소송은 대법원 9건, 고등법원 6건, 1심 52건으로 총 67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