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무대에 오른 10대 소녀가 이렇게 조부모를 챙기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신영의 눈은 금세 붉어졌다. 장소는 14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설 특집 1020 전국노래자랑' 녹화장. 21일 제작진에 따르면 김신영은 "저도 이렇게 '전국노래자랑'에서 진행하는 모습을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사연은 이렇다. 김신영은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초등학교 때 한 학기 동안 이사만 여덟 번을 다녔다. 판잣집뿐 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도 살았다. 소녀는 전남 목포에 사는 외할머니와 경북 청도에 있는 친할머니 집을 오가며 자랐다. 그가 구수한 사투리와 노인 캐릭터를 실감 나게 표현하는 배경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할머니들과 쌓은 추억은 김신영이 무대에서 선보인 희극, 그리고 시청자와 격의 없이 나눈 소통에 밑거름이 됐다. 그가 두 할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는 "사람이 소중하다"였다. 그런 김신영이 자신처럼 어려서 할머니와 정을 돈독하게 쌓은 소녀를 '전국노래자랑'에서 보고 울컥한 것이다.
유유상종인 걸까. K팝 아이돌처럼 그룹 셀럽파이브로, 때론 '45년생 다비 이모'란 캐릭터로 트로트를 부르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김신영처럼 '전국노래자랑' 설 특집엔 10대와 20대의 '문화 혼종족'이 모였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1940)부터 남인수의 '추억의 소야곡'(1955)까지. 10·20대만을 위한 특집에 출연한 중2 학생은 그가 태어나기 반세기 전에 나온 옛 노래들을 마치 제 또래 노래처럼 능숙하면서도 구수하게 불러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피아노학원에서 원장님이 즐겨 듣던 옛 노래에 빠진 소년은 전통 가요를 '디깅'(Digging·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다)하기 시작했다. 소년이 TV로 '가요무대'를 볼 때 방탄소년단 팬인 그의 아버지는 '뮤직뱅크'로 채널을 돌렸다.
'전국노래자랑' 설 특집에서 10·20대 출연자들은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을 비롯해 뉴진스의 '하입 보이' 등 최신 K팝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트로트와 K팝의 문화적 유전자를 모두 지닌 밀레니얼 세대 김신영이 프로그램을 맡아 가능한 시도다. 고세준 '전국노래자랑' PD는 "1020 특집에서 트로트와 K팝, 록 등 장르별로 경쟁 무대를 꾸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설 명절에 방송되는 만큼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들려줬다.
김신영은 넓은 인맥으로 '전국노래자랑' 설 특집에 깜짝 손님도 불렀다. 그의 연예계 '절친'으로 유명한 가수 거미는 이번 녹화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데뷔 20년 만의 '전국노래자랑' 첫 출연이다. 'Z세대의 발라드 아이콘'으로 통하는 폴킴도 '전국노래자랑'을 찾는다. 김신영은 특유의 넉살로 폴킴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뒤 그의 숨겨진 'K팝 댄스 본능'을 끌어냈다. 22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