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20세기 당총재의 정당인가. 대통령실이 나경원 전 의원을 타깃 삼자 친윤 세력이 일제 공격하는 이 광경을 믿을 수가 없다. 5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대출 탕감 저출산 대책을 발표한 다음 날 안상훈 사회수석이 “정부의 정책과 무관”하다며 공식 반대한 게 시작이었다. 대통령실은 9일 사퇴 언급으로 치달았고 “(사의 표명을) 들은 바 없다” “사직서는 내지 않았다” 등 온갖 꼬투리를 잡다가 기후환경대사직까지 한꺼번에 해임해 버렸다. 나 전 의원으로선 정치생명이 끝날 판이니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를 때려서 키운 꼴이다.
친윤들의 집중포화는 유승민 전 의원 표현대로 ‘집단 린치’라 할 만하다. “(순방 떠나는) 대통령 등 뒤에다 사직서를 던지는 행동”(장제원) “한번 튀어보려고 발표한 것”(홍준표)이라고 비난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정부직을 맡으면서 당대표를 한다면 비판이 들어올 것”(김기현)이라며 그가 출마할까 봐 전전긍긍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대출 탕감 제안이 그렇게 큰 잘못일 리 없다. 핵심은 내년 총선 공천권일 터다. ‘당대표 적합도 1위’로 조사된 유 전 의원을 막으려 전당대회 룰을 바꿨는데, 변경된 룰이 나 전 의원에게 유리하자 흠집을 내려 작정한 것 아닌가. 비겁한 당권 다툼도 꼴사나운데 그 선봉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는 게 더 문제다. ‘당원투표 100%가 낫지 않나’라는 발언도, 이준석 전 대표 찍어내기의 시작점이었던 ‘내부총질 당대표’ 문자도 윤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이준석 사태 때는 최소한 ‘성상납 의혹 증거 인멸’이란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지금은 ‘윤핵관 당대표 만들기’와 충성경쟁만 보인다. 여기 어디에 당원의 뜻이 있고 민주주의가 있나.
이런 식으로 ‘윤석열 사당(私黨)’으로 재편해서 국민의힘은 무엇을 하자는 건가. 총선 때도 지금처럼 또 편법과 린치를 동원해 친윤 일색 공천을 하지나 않을까. ‘자체 핵무장’ 같은 대통령의 무리한 발언에 이견과 토론이 나오기는 할까. 지금은 소수나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 상식적인 목소리마저 남아날지 의문이다. 대형 참사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방치하고, 국회에 비속어 날리는 대통령을 두둔하기만 하는 정당으로 남겠다는 건가.
당의 퇴행은 이미 국민 눈에 확연해 보인다. 나 전 의원은 장 의원을 겨냥해 “제2 진박 감별사”라고 반격했는데, 진박 공천 파동 끝에 제1당 자리를 내준 2016년 총선을 떠올리는 게 그만은 아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을 공격하면) 당과 선거관리위원회가 즉각 제재에 나서겠다”고 했다가 유 전 의원으로부터 “여기가 북한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비판을 막기 시작하면 민심과 동떨어진 정당이 되는 것도 뻔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경쟁 계파를 죽여 당을 독점하는 구태를 답습할 이유가 없다. 정치 경험 없는 대통령에게 단점이 많지만 기존 정치세력에 빚이 없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다. 당내 다양한 세력이 경쟁하게 놔두고 그중 귀담아들을 제언을 수용하면 될 일이다. 당심도 민심도 잡지 못해 온갖 편법을 동원해도 당권을 잡을까 말까 한 ‘윤핵관’을 내세워서는 총선 승리를 꿈꿀 수 없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획일적 정당이 정책과 비전에서 앞서갈 리 만무하다. 윤 대통령의 포석이 일찌감치 임기 후를 대비하는 것이라 해도, 충심이 아닌 국민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일이다. 3김 시대 이후 당이 ‘당총재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고 시스템 공천과 당내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공당(公黨)의 길로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