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53잔' 매일 마시는 커피... 그 많은 찌꺼기는 어디로 갈까?

입력
2023.01.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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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커피공화국 한국... 커피 찌꺼기 15만 톤 ↑
묻거나 태우면 온실가스 배출돼 
점토·벽돌·연필·플라스틱 등 활용 분야 다양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침에 눈 비비며 한 잔, 점심 식사 후 한 잔, 나른한 오후를 보내며 한 잔. 오늘만 아메리카노 커피를 세 잔째 마십니다. 저처럼 피곤을 커피로 달래는 사람이 많은지, 커피머신 옆에는 동그란 커피 찌꺼기 덩어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커피를 뽑을 때마다 나오는 저 찌꺼기는 매일 몇 번씩 통을 비워야 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는데요, 버려진 커피 찌꺼기들은 어디로 갈까요?

커피공화국 한국... 커피박은 15만 톤 이상

우리나라는 세계를 주름잡는 '커피공화국'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20세 이상 국민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53잔으로, 전 세계 평균 소비량(132잔)의 3배에 육박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은 커피를 거의 매일 한 잔씩 마시는 셈이죠.

커피 소비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국세청 무역통계를 보면 지난해 1~11월 커피 수입액은 11억9,035만 달러(약 1조4,742억 원)로,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2021년 같은 기간 대비 45.1%나 성장한 수치죠. 카페도 우후죽순으로 늘어, 지난해 말 기준 커피·음료점업 점포 수는 역대 최대인 9만9,000개로 집계돼 치킨집(8만1,000개)보다도 많았습니다.

커피콩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뒤 남은 커피 찌꺼기인 '커피박(粕)'의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보통 아메리카노 한 잔에 원두 15g이 들어가는데,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나면 14.97g(99.8%)은 커피박 형태로 남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9년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커피박 규모를 약 14만9,083톤으로 추정했는데, 당시 연간 커피 수입액이 6억6,167만 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커피박이 배출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출되는 커피박이 많아진다는 것은 쓰레기가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커피박은 식물성 잔재물 생활폐기물로 분류됩니다. 생활폐기물은 폐기 방법이 매립이나 소각 둘 중 하나인데, 커피박을 소각하면 1톤당 이산화탄소가 338㎏ 발생합니다. 매립하면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나 심각한 온실효과를 유발합니다. 어떻게 처리되든 간에 커피박은 폐기되는 과정에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벽돌·점토·연필... 커피박의 변신은 무죄

그래서 가정에서도 커피박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은 커피박을 통에 담아 냉장고, 신발장처럼 냄새 제거가 필요한 곳에 넣어두는 겁니다. 커피박은 커피향을 머금고 있고, 냄새를 흡수하는 성질도 있어 탈취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는 커피박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재활용이 활발합니다. 일례로 2018년 현대제철과 환경재단, 한국생산성본부 3개 기관은 '커피박 재자원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인천 지역 카페 중 참여를 원하는 곳의 신청을 받아 배출된 커피박을 수거하고, 지역 자활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커피박 활용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커피박 활용 사업 공모에 선정된 기업에 무료로 제공해 활용하게 하는 식입니다. 환경재단 관계자는 "현재까지 530여 곳의 카페가 커피박 수거에 동참하고 있다"면서 "2021년 기준 한 해 동안 120톤이 수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커피박 활용 제품은 종류가 무척 다양합니다. 섬유질·단백질·지방 등이 함유돼 있어 축산농가의 퇴비·사료, 점토, 파벽돌(인테리어에 사용하는 벽돌 타일)을 만들 수도 있고, 커피박과 플라스틱 원료, 첨가물 등을 배합해 커피박 플라스틱 원료로 재탄생시켜 여러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프로젝트를 통해 △연필·화분·벽돌 30만 개 △목재 덱 5,000개 △축사 악취 저감비료 5,000포 등이 제작됐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나오는 커피박을 제품화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관련 기술을 보유한 업체 커피큐브로부터 기술·기계를 전수받아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커피박 환전소'가 대표적인데요.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커피박을 가져오면 저렴한 값에 커피박 점토로 바꿔주기도 합니다. 서울 양천구 '신정생활상권추진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커피박 환전소는 관련 체험을 할 수 있어 어린이나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고유미 커피큐브 총괄매니저는 "커피박 점토는 나중에 버린다 해도 소량일뿐더러 채소 추출물과 함께 섞여 만들어진 것이라 발효시키면 퇴비로 활용할 수도 있다"면서 "앞으로 '커피박 환전소'를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자원순환센터처럼 구축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도 커피박 활용 가능성을 높게 봐, 지난해 커피박의 순환자원 인정 문턱을 낮췄습니다. 당초 사업장 폐기물 수거·처리 업체가 수거한 것만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일반 커피전문점에서 나오는 커피박도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을 길이 열린 겁니다. 신청을 통해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으면 폐기물관리법상 규제를 면제받고, 승인받은 용도로 자유롭게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도 개선 이후 처음으로 스타벅스가 순환자원 인정 신청서를 지난달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커피박이 순환자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 길이 열린 만큼, 선도적으로 길을 닦아 커피박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