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각자도생의 사회에 가속도를 붙였다. 타인과 거리 두기가 강제되면서 공동체의 결속력이 약화됐고, ‘함께’의 가치가 흔들리면서 개인주의는 강화됐다. 공존의 빛이 바래자 승자독식의 영광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묻는 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 포용을 언급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BTS 예술혁명'의 저자 이지영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팬데믹 기간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가장 먼저, 가장 잔인하게 상실되고 파괴됐다고 본다”며 "약자를 경시하고 더욱 밟는 비정한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전염병 자체에 가장 많이 노출된 계층도 사회적 약자였다. 수의사인 서상혁 아이엠디티 대표는 "팬데믹 기간에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사망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런 (약자의) 처지였다면 나도 이 세상에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감을 느꼈다"며 "사회가 안정되면 약자를 배려하지만 혼돈이 발생하면 그 가치들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영학 번역가도 “승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겐 더욱 힘든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단절로 관계 맺음 자체가 힘들어졌다.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은 “물리적으로 단절되다 보니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 줄고 상황이나 맥락이 제외된 채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타인을 바라보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포용과 평등의 가치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승현 나란히 희망철학연구소 철학교수는 "공감 능력이 사라져 남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삶이 각자의 생존과 무관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런 무관심이 개개인의 삶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국천문연구원 황정아 박사는 "장애인연대의 파업 때문에 출근길이 불편해지고 화물연대의 파업 때문에 주유소에서 기름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생존과 관련된 그들의 문제가 언제라도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의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안전망이라는 얘기다.
전염병 확산이나 기후 위기 등 여러 문제도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에 대한 존중을 상실한 데서 비롯됐다는 성찰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우리 인간이 다양한 식물, 동물과 동등하게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을 인지했다면 지금의 환경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겁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을 잊은 이들은 혐오를 앞세워 서로에게 총을 겨눕니다. 그 총구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무관심이 쌓이면 그 힘은 어떤 세력보다 커집니다. 계급과 성별, 국경, 생물학적 종 구분 없이 우리 주변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허태임 식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