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유력 당권 주자로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한 나경원 전 의원이 공개 행보에 나선 지 하루 만에 다시 잠행에 들어갔다. 친윤석열계 인사들이 불출마를 전방위로 압박하자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이 연이틀 당의 화합을 강조하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이 ‘출구 전략’ 찾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나 전 의원은 12일 서면으로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이 정치적 결단을 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날 지역구와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나 전 의원은 12일 공개 일정을 잡지 않은 채 칩거했다. 대신 당 안팎의 조언 그룹으로부터 향후 정치 행보와 관련한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에는 지역 모처로 향했다고 한다. 나 전 의원 측은 "지역에서 한동안 머물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대 출마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미묘한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세종시당 신년인사회에 보낸 영상 축사를 통해 “우리 다시 한번 힘을 뭉쳐서 윤석열 정부가 성공할 수 있게 하고, 총선에서 승리하자”고 호소했다. 전날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선 “절대 화합”, “절대 단결”, “일치 단결”이라는 말로 정권 성공과 2024년 총선 승리를 거듭 강조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를 두고 나 전 의원이 전대 출마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나 전 의원이 기후환경대사직은 내려놓지 않은 것도 정치적 퇴로를 닫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친윤계에서는 나 전 의원이 전대 불출마를 선언하고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의 사의를 반려해 향후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방안이 출구 전략의 하나로 거론된다. 친윤계 한 인사는 “나 전 의원이 끝내 전대에 나온다면 ‘제2의 유승민, 이준석’으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며 “당으로서도, 나 전 의원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결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 측 한 관계자는 “단순히 전대 출마 여부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 성공과 2024년 총선 승리를 위해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심하고 있다”며 "여권 원로 등과 폭넓게 소통하며 결단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나 전 의원의 전대 출마 여부는 결국 사의 표명에 대해 윤 대통령이 어떻게 응답하는지에 달렸다는 게 여권의 대체적 전망이다.
범친윤계의 길을 걸었던 ‘정치인 나경원’이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비토를 딛고 전대 출마를 강행할 이유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당심 1위’를 달리는 상황에서 불출마를 결단할 명분도 결국 윤 대통령만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실제 대통령실 실제 기류는 알려진 것과 다른 측면이 있다”며 “나 전 의원으로서는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 전대 정국의 키를 쥔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 거취와 관련해 “상황도 입장도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나 전 의원이 인사혁신처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구체적 행정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하며 “다른 게(사의 수용 여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저변의 분위기는 공식 입장보다 강경하다. 특히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나 전 의원 전대 출마 여부와 관련한 논란을 여당 차원에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기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제는 우리 입장은 없다. 대통령이 이래라저래라 나서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이 던진 '사퇴 카드'에 응답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나 전 의원 스스로 정치적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라는 의미다.
나 전 의원은 13일 부위원장직 서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대통령실로 공을 다시 돌렸다. 대통령실이 인사혁신처에 서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는 데 대한 반응이다.
나 전 의원 측 좌장 격인 한 전직 의원은 "사직의 뜻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내일 오전 인편으로 서면 사직서를 제출키로 했다"며 "대통령실 일부 참모진이 전대에 영향을 끼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나 전 의원은 불출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이달 안으로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