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마다 작성하는 결심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재테크인데요. 주식, 부동산, 채권… 다양한 투자 수단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천장을 뚫고 대내외 불확실성이 클 땐 “빚 갚는 게 재테크”라는 말이 나와요. 목돈을 굴려 수익을 얻는 것보다 대출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빚테크(빚 갚기 재테크)’를 시도하려고 보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대체 어떤 대출부터 갚아야 할지, 금리가 낮은 상품으로 갈아타는 게 무조건 좋은 건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죠. 불가피하게 새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요? 새해 대출전략 수립 전 머리를 가득 채운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보았습니다.
대출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고려할 건 ‘금리’예요. 금리가 낮을 땐 튼튼한 직장만 있다면 대출이 별로 무섭지 않았어요. 많은 이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내 집 마련에 나서기도 했죠. 아시겠지만 먼 과거도 아니에요. 2년 전 유동성 잔치가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당장 대출을 받아 아파트 매수나 투자에 뛰어들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았잖아요.
실제로 2021년엔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신용대출을 둘 다 받은 ‘동시 차입자’가 많았습니다. 한국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4분기 한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상 주담대 신규 대출자 중 신용대출 동시 차입 비중은 40%대를 기록했어요. 새로 주담대를 받은 사람 100명 중 40명 이상은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썼다는 뜻입니다.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죠.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지난 2분기 동시 차입 비중은 36.5%로 떨어졌어요. 전체 가계대출도 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지난해 은행 가계대출은 총 2조6,000억 원 감소해 2004년 통계 작성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감소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기타대출이 22조8,000억 원이나 줄어든 영향이 컸죠. 주식ㆍ부동산시장 침체로 신규 대출 수요 자체가 주춤하기도 했겠지만, 이자 부담을 느낀 대출자들이 적극 상환에 나선 것도 주효했던 것 같아요.
고금리 상황은 올해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점점 더 어깨를 짓누르는 빚의 무게, 어떻게 정리해나가는 게 현명할까요? 자산관리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고제헌 신한PWM압구정센터 PB팀장과의 일문일답이에요.
-빚, 갚을 때인가요, 낼 때인가요?
“최소화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지금으로선 기준금리 상승세가 멈추더라도 높아진 금리를 1년 정도 유지하다가 경기 상황을 보며 서서히 낮출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올해도 대출금리는 고공행진을 유지할 것이므로 여유자금과 대출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면 일반적인 경우는 대출을 상환하는 것이 맞습니다.”
-상환에 나서기 전 주의할 점이 있다면요?
“대출금리는 다양한 조건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본인의 대출 조건과 금리 우대 요건이 어떤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에요. 대출 상환 시 중도상환수수료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도 사전에 확인할 부분입니다.”
-어떤 걸 우선적으로 갚는 게 좋을까요?
“당연히 금리가 높은 것부터 상환해야 합니다. 현금서비스 같은 카드사 단기대출, 캐피털사의 자동차 할부대출 등은 제2금융권 대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신용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 대출 중에선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부터 상환하고 담보대출을 나중에 상환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금담보대출은 가장 마지막에 상환하세요. 표면적으론 금리가 높을 수 있지만 담보로 제공한 예금에도 이자가 붙고 있기 때문에 실제 고객이 부담하는 금리는 1% 남짓인 셈이거든요.”
-마이너스 통장 없앨까요?
“마이너스 통장은 사용한 만큼 일계산해 대출금리를 부과하기 때문에 한도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여유자금 성격으로 유지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하지만 한도를 쓰지 않더라도 금융기관에서 개인 현황을 조회할 땐 대출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는 점, 알아두세요.”
-갈아타기(기존 대출 상환 후 신규 대출)도 추천하나요?
“지금 대출을 유지하는 편이 나을 수 있어요. 금리를 낮추기 위한 방편일 텐데 금리 상승기엔 큰 의미가 없거든요. 갈아타기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사 가면서 주택 구입 목적으로 받은 대출을 갈아타려고 알아보면 현 시점에서의 집은 기보유 주택이라 대출 목적이 달라지고 원하는 한도가 나오지 않기도 해요. 대출 재조정은 장기간을 요하고,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신규 대출을 받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한다면 금리 변화 흐름을 잘 짚어야 해요. 비슷한 조건이면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높은 게 일반적입니다. 미래의 금리 변동 리스크를 반영해야 은행 손실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저금리 시기 대출자가 변동금리 상품을 선호한 것도 고정금리가 더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동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어요. 한은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만기가 짧은 채권의 금리가 치솟았기 때문이죠. 은행들이 고정형 대출에 낮은 가산금리를 부여하면서 고정금리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중은행 가계대출 담당자들도 “당장은 고정금리가 유리한 상황이 맞다”고 말해요. 금리가 추가로 오르더라도 이자 부담 늘어날 걱정이 없으니까요.
변수는 금리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시점이에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은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지만, 시장에선 올해 하반기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죠. 고 팀장은 “2년 정도의 대출을 생각 중이라면 고정이 낫고, 5년 이상 장기 대출을 고려한다면 단기물(변동형)을 택해 추후 금리 하락에 따른 수혜를 기대해 볼 수 있다”면서도 “현 시점의 금리 흐름 예측을 기반으로 나온 제안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자격이 된다면 금리인하요구권이나 정책금융상품을 신청해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을 받은 뒤 소득 증가 등으로 재무 상태가 좋아져 상환 능력이 커졌을 때 금융사에 “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저축은행ㆍ카드사ㆍ보험사 등 2금융권 고객도 신청할 수 있어요. 참고로 지난해 상반기 은행권(19개사)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24.8% 수준이었습니다.
실거주용 주택 구입을 계획하는 분이라면 30일 출시하는 ‘특례보금자리론’을 눈여겨볼 만해요. 기존 정책 모기지 대출상품을 통합해 1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데, 소득 제한도 없고 대출 한도도 5억 원이나 돼요. 주택가격 6억 원 이하, 부부 합산소득 1억 원 이하를 충족하는 ‘우대형’ 신청자가 적용받는 금리는 4.65~4.95% 정도로 시중은행 고정금리보다 낮습니다. 신혼가구ㆍ사회적 배려 계층ㆍ저소득 청년에 해당하면 최대 0.9%포인트까지 추가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특히 기존 주담대를 특례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거나, 특례보금자리론을 만기 전 상환하는 경우 둘 다 중도상환수수료를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추후 시장금리가 4% 밑으로 낮아져 실익이 없어졌을 때 더 유리한 상품으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뜻이라 금리 변동성에 따른 불안감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