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영끌족, 한국만 우는 거 아니네"...영국 등 유럽도 '신음'

입력
2023.0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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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77만가구 대출 부실 전망
주담대 이자 2배 뛸 전망...미국도 상황 비슷
주택 시장도 침체 "10% 더 하락" 예상

고금리에 신음하는 '영끌족(빚을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뜻)' 증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벌이에 저금리를 발판 삼아 내 집 마련을 서둘렀던 '20·30세대' 한숨이 늘고 있다는 것도 전 세계적인 공통된 모습이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영국에서도 치솟는 금리에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차주가 증가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에 따르면 향후 2년 안에 77만 가구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연체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영국 전체 주담대의 약 9%에 해당하는 규모다.

부실 차주 증가는 글로벌 긴축 여파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대출 이자 부담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이 일차적 원인이다.

영란은행(BOE)은 2021년 12월(연 0.25%)을 시작으로 기준금리를 연 3.5%까지 끌어올렸다. 영국의 주담대는 2~5년간 금리가 일정한 고정금리 형태를 띠지만, 이후 금리가 재설정되는 상품이 대부분이다. 고정금리 기간이 만료돼 조정을 앞둔 주담대는 올해만 140만 건 이상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2% 미만의 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현재 영국의 주담대 고정금리가 연 5%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고정금리 기간이 끝나는 대출 상품의 이자는 두 배 이상 뛴다는 얘기다.

이자 상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사정은 영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다른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30년 이상 장기 고정금리를 운용하는 미국도 최근 모기지 평균금리가 연 6.42%까지 뛰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금리 상승에 대출 수요가 줄면서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졌다"고 전했다.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으면 좋겠지만, 집값이 크게 떨어진 데다 거래도 잘되지 않아 차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 여파로 지난해 4분기 이후 내년 말까지 집값이 9%가량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인 리솔루션재단은 "약 14만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끌어다 쓴 주담대 가치보다 낮은 가치의 집에 살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영국은 특히 20·30세대의 부실 위험이 커진 점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20·30세대는 수입이 많지 않지만, 팬데믹 기간 조성된 저금리를 발판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켜 주택을 매입했다. 당시에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지금 집을 안 사면 영영 못 살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하던 시기다. FCA는 "이들은 소득 수준이 낮아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며 "30세 미만의 젊은 사람들의 위기감이 특히 크다"고 우려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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