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긴 전쟁에 러시아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다음 달 개전 1년을 맞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세계 2위 군사 대국 러시아가 코너로 몰리고 있다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천문학적 전쟁 비용 지출로 나라 살림은 적자에 허덕이고, 패색까지 짙어지면서 러시아 붕괴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한다는 과격한 경고까지 나온다.
일단 러시아 곳간 사정이 심상치 않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정부 회의에서 "지난해 러시아 재정 적자가 3조3,000억 루블(약 59조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이다. 코로나19 충격이 전 세계를 덮친 2020년을 제외하면, 1991년 옛 소련 해체 이후 31년 만의 최대 적자 규모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쏟아부은 군비 지출이 최악의 재정 적자를 불렀다. NYT는 "러시아 정부는 지출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지출 증가의 상당 부분이 늘어난 군사비 때문이란 게 중론"이라고 전했다.
지난달부터 주요 7개국(G7)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며 곳간 구멍이 더 커졌다. 재정 수입이 큰 타격을 입고 경제침체가 본격화될 거란 전망이 끊이지 않는다. 경제기관들은 러시아 경제가 지난해 역성장한 데 이어, 올해 성장률도 마이너스(-) 5%에 가까울 것으로 본다.
'무기 고갈' 징후도 있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러시아군의 포격량이 가장 치열했을 때와 비교해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이유야 뭐가 됐든 러시아가 전장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전으로 국가가 붕괴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알렉산더 모틸 미국 럿거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역사상 전쟁, 혁명, 경제 위기 뒤에 국가가 붕괴한 사례가 많다"며 "우크라이나 패전은 체제 붕괴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패전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면 사회 불안정을 틈탄 권력 투쟁이 폭발할 것이란 시나리오다.
최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각국 외교 정책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67명 중 46%가 "앞으로 10년 안에 러시아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의 패전을 상정하기엔 이르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군 병력 확대 계획 등을 공개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꺾을 수 있다.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군수 물자 제공을 급격히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