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기 위해 국방부 등의 언론 대응 자료 작성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을 지난달 재판에 넘기며 "(서 전 실장이) 모든 월북 조작을 주도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10일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30분 북한 해역에서 이대준씨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처음 보고받았다. 국방부 등에 후속 조치를 지시하지 않은 채 오후 7시 퇴근했던 서 전 실장은 그날 밤 이씨의 피살 사실을 보고받았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심했다고 봤다. ①구조 못 한 책임 회피 ②이씨 피살 3시간 뒤 예정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남북 종전선언 촉구 관련 유엔총회 연설 비판 방지 ③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서 전 실장은 9월 23일 새벽 1시 1차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보안 유지'를 지시했다.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보고 없이 지시가 이뤄진 것으로 봤다.
서 전 실장 지시에 따라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군 첩보 담당 부대와 예하 부대에 첩보 보고서 5,417건 등을 삭제토록 했으며, 해양경찰청에도 이씨가 '실종 상태'라는 보도자료 작성 지시가 내려갔다. 23일 오전 비서관 회의에서 내려진 함구령에 반발한 일부 비서관은 회의 뒤 "미친 것 아니냐. 덮을 일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진 2차 관계장관회의에선 국방부가 '이씨 실종 뒤 북한에서 발견 정황'만을 공개하도록 결정됐다. 서 전 실장은 회의 직후 "국방부에서 월북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방향으로 정리해줘야 한다"고 했다. 서욱 전 장관은 이에 군의 최초 분석보고서 결론에 "'자진'을 추가하고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다'고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군 차원에서 충분한 검증 없이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서 전 실장은 같은 날 국방부의 언론 공지용 문자메시지 초안 보고에 '선상에서 신발만 발견, 실종자는 발견 못 해 해경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 대목을 직접 추가했다. 그는 이후 해경 보도자료 작성에도 직접 개입해 'CC(폐쇄회로)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가정 불화로 혼자 거주' 등의 내용을 직접 넣어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기자에게 알리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김홍희 당시 해경청장은 이를 따랐다.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서 전 실장은 허위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서 전 실장은 23일 밤 언론 보도 이후 이씨의 피살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4일 아침 3차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국방부에 이씨 피살을 공개하도록 했다. 백브리핑(비공식 설명)으로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처럼 보도되도록 하라는 단서가 붙었다.
이어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김 전 청장에게는 당일 월북 취지 결과 발표를 지시했다.
해경에선 이씨가 실종되기 전 구명조끼 착용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되레 월북과 배치되는 수사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서 전 실장은 서 전 장관에게 '국방부 감시자산 확인 결과를 해경에 제공해 구명조끼 착용을 확인한 것으로 정리하라'고 했다.
해경은 결국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1차 발표를 해야 했고, 사흘 뒤에는 추석 민심 악화를 우려한 서 전 실장으로부터 "선명한 입장을 발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검찰은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2차 해경 발표가 나온 9월 29일에도 서 전 실장이 허위 발표에 맞춰 대응할 것을 각 기관에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해경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월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자, 증거를 찾으려 무리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반복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이씨의 도박 채무 등 사생활을 월북 동기로 왜곡했다고 검찰은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