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동거녀 살인 사건의 직접 증거인 피해자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재판 과정에서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9일 경기북부경찰청과 일산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이기영이 50대 동거녀 A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한 지난달 27일부터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이날까지 시신을 찾지 못했다. 이기영이 3일 진술을 바꿔 “시신을 땅에 묻었다”고 지목한 공릉천변부터 서해로 이어지는 한강하구까지 9㎞를 뒤졌으나 성과가 없었다.
수색이 장기화하면서 ‘시신 없는 살인 사건’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사당국도 시신 수습에 실패할 것에 대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그가 지목한 집 침대 주변에서 발견된 혈흔 등을 토대로 증거수집에 총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이기영이 자백했다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정석 법무법인 영진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살인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했어도, 이를 입증할 시신이나 범행도구, 목격자 등 보강증거가 확보돼야 한다”며 “보강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백까지 번복하면 혐의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거녀 살인사건의 경우 시신과 범행 도구는 물론 목격자나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도 확보하지 못했다. 시신이 없어 사인과 범행 수법도 규명되지 않았다. 이기영 거주지에서 발견된 혈흔의 유전자 정보(DNA)도 대조할 시신이 없어 숨진 동거녀의 것으로 추정할 뿐 완벽하게 입증되진 않았다.
이기영이 범행한 지 3, 4일이 지나 파주지역에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시신 유실 가능성도 있지만, 이기영의 진술 번복 자체가 거짓말일 수도 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실장(연구위원)은 “이기영이 자주 거짓말을 했던 만큼 제3의 장소에 시신을 숨겼는지 집중 추궁해야 한다”며 “상습 폭행 등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면 수사가 다시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을 우려해 거짓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기영은 지난해 8월 7, 8일 파주 집에서 동거하던 집주인 A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공릉천변에 유기하고, 같은 해 12월 20일 음주운전 중 충돌사고가 발생한 60대 택시기사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숨긴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추가 심리분석을 진행하는 등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