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갑질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피하는 대신 국내 반도체 중소기업·인력 양성을 위한 200억 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조성한다. 브로드컴이 벌어들인 이익에 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브로드컴과 협의를 거쳐 마련한 잠정 동의 의결안에 대해 다음 달 18일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밟는다고 밝혔다. 동의 의결은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등 제재를 하지 않고 피조사 기업이 혐의를 스스로 고치는 방식으로 피해 기업을 구제하는 제도다.
브로드컴은 △와이파이 △블루투스 △위성항법시스템(GNSS) 장비 등 스마트폰 필수 부품을 삼성전자에 판매하면서 3년 장기계약을 강요한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매년 7억6,000만 달러(약 9,120억 원·환율 1,200원 적용) 이상의 부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차액만큼 브로드컴에 물어주는 불공정 거래였다.
브로드컴은 앞으로 5년 동안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기업 지원에 각각 77억 원, 123억 원을 쓰겠다고 했다. 일종의 '과징금 면죄부'다. 또 삼성전자가 장기계약 기간 주문한 부품으로 만든 갤럭시 Z플립, 갤럭시 S22 등에 대해 3년간 품질 보증, 기술 지원을 하기로 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지 않는 브로드컴이 자사 부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회피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브로드컴 입장에서 과징금 성격인 상생기금 조성액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와의 장기계약 기간 동안 거둔 관련 매출액은 7억 달러(약 8,400억 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미국 반도체·통신장비기업인 퀄컴에 대해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에 이동통신 특허기술을 제공하면서 경쟁사 제품 사용 시 더 높은 로열티를 부과한 혐의로 2009년 공정위가 과징금 2,732억 원을 부과했던 전례도 비교된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퀄컴 건과 브로드컴 건은 부품 단가, 피해 기간 및 규모 등이 차이가 난다"면서 "상생기금 200억 원은 최대한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을 확실히 넘어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