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위에 인권위

입력
2023.0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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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역할 자임한 환경부, '기후위기' 숙제부터 충실히 해야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달 3일 환경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보도자료 제목을 보자. ‘녹색산업, 2023년 20조 원, 임기 동안 100조 원 수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한데 대한 답이겠다. 탄소감축 이행계획(3월 발표 예정) 내용은 담겨 있지도 않다. 환경부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역할을 한다면, 환경부 역할은 공석인가.

의외의 정부기관이 환경부 역할을 꿰찬 건 바로 다음 날(4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의견표명’이라는 13쪽짜리 결정문을 냈다. 수신처는 ‘대한민국정부(대통령)’로 돼 있다.

□ 환경부가 소거한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이 결정문에 가득 찼다. 인권위는 정부의 탄소감축 목표가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탄소중립법 시행령상의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에 대해,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의 비례성과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감축 책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정부의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이 요구된다”고 했다. 온실가스 대량 배출 기업의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기후변화 관련 기업공시의 강화도 요구했다.

□ 인권위가 나선 건, 기후위기가 인권을 위협해서다. “기후위기는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인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인권위의 진단이다. 그리고 주문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유형화하고 기후변화가 취약계층의 고용, 노동조건, 주거, 건강, 위생 등에 미치는 위협 요소를 분석하여 취약계층 보호 및 적응역량 강화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 안타깝게도 인권위의 결정문은 ‘의견’일 뿐,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건 환경부 같은 정부부처다. 환경부는 정부 내에서 ‘비주류’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낮추고 지우는 건, 국가 전체로 봤을 때 큰 리스크이다.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명분은 환경부가 강단 있는 목소리를 낼 든든한 ‘뒷배’ 아닌가. 능력이 넘친다면, ‘산업부’가 할 일을 도와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신의 숙제부터 충실히 하고 난 다음이다.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