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경계에서 실패 가능성이 큰 수술을 집도하는 담력, 끝내 비보를 통보해야 하는 책임감. 외과 의사의 자질로 흔히 꼽히는 것들이다. 일반인의 정서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로봇 같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하는 발상도 나온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져 타인에 대한 인지적 공감이 어려운 외과 의사가 ‘굿 닥터’로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신작 ‘칼끝의 심장’의 저자인 스티븐 웨스터비는 ‘로봇 같은’ 면모로 세계적인 심장외과 의사가 된 실제 인물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유년을 보냈던 저자는 대학 시절 럭비 경기 중 사고로 전전두엽이 손상되면서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갖게 된다. 저자는 이를 비극이 아니라 ‘외과 의사에게 알맞은 성격 유형을 갖도록 발휘된 효과’라고 표현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심장 수술 후 사망률이 25%에 달했던 때, 저자는 홀로 6%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저자는 35년간 옥스퍼드 대학병원 등에서 수행한 1만1,000여 건의 심장 수술 중 현대 심장학 발전과 연관된 일화들을 들려준다. 환자의 피를 수시로 빼고 체온을 낮춰 수혈 없이 수술을 단행하거나, 소의 판막을 이용한 재건 수술에 성공했을 때 등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수술실 안의 풍경이 생생하다.
저자는 "내 예리한 칼끝에 한 인간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책의 궁극적인 매력은 결국 환자를 무력하게 떠나보내야 할 때 드러나는 인간적 고뇌다. 이따금 수술실 건물 뒤 묘지를 찾아가 20년 전 떠나보낸 심장 환아를 떠올리며 덤덤하게 내뱉는 이런 문장들이 그렇다. "나는 가끔 울적할 때면 이곳에 앉아,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