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 CES에 등장할 혁신 제품·기술을 기자들에게 미리 보여주는 CES 언베일드(unveiled) 행사가 열렸다. 언베일드 행사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던 제품은 프랑스 농기계업체 메로피(MEROPY)가 만든 경작지 정찰 로봇 '센티브이'(SentiV)였다.
센티브이는 자기 몸체보다 긴 12개씩의 다리를 양옆에 달고 있다. 몸통 아래쪽엔 두 대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기기와 연결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지도에 '정찰 구역'을 설정하면, 센티브이가 다리를 바퀴처럼 돌려가며 경작지를 정찰한다. 이렇게 움직이며 잡초, 해충 등 작물에 해가 되는 위험 요소를 탐지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위험 지점을 표시한다. 메로피 관계자는 "센티브이는 하루에 20만㎡(축구장 약 28개 넓이)까지 커버할 수 있다"며 "성공적인 경작을 도와줄 것"이라고 자랑했다.
CES 주최자인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올해 행사에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가치다. 인간이 맞선 생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혁신 기술, 관련 신제품이 가까운 미래에 대거 등장할 것이란 의미다. 스티브 코닉 CTA 부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전 세계가 여러 문제에 당면해 있지만, 기술이 이런 난제들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언베일드에서도 대규모 전염병(팬데믹)이나 기후 위기에 대응해, '인류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관심을 끌었다. 특히 센티브이처럼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할 애그리테크(Agritech·농업기술),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킬 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이 돋보였다.
이번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미리 수상한 미국 농기계 업체 존디어(John Deere)의 자율주행 트랙터가 대표적인 애그리테크 제품이다. 이 트랙터는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작업 오차 범위도 약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농업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비용 감소도 기대된다.
존디어의 존 메이 최고경영자(CEO)는 5일 CES 개막식 기조연설자로 나서는데, 농기계 업체 대표가 기조연설을 하는 건 처음이다. 정보통신(IT) 분야와 가장 멀어보였던 농업이 테크업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 스타트업 애그리스트(Agrist)도 인공지능(AI) 기반의 수확 로봇 '엘'(L)을 들고 CES를 찾는다. 엘은 잘 익은 피망만 골라서 쏙쏙 따내는 로봇이다. 수확할 피망의 위치, 크기, 성숙도를 선택할 수 있고, 정확한 자르기 지점까지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1만 달러로, 기존 수확 로봇들보다 6, 7배 저렴하다고 한다.
코로나 대유행을 거치며 뜨거워진 분야인 헬스케어도 이번 CES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고혁신상 수상작인 싱가포르 애바이스헬스(Aevice health)의 '애바이스엠디'(AeviceMD)는 폐 소리 청진에 특화된 동전 크기의 청진기다. 가슴에 부착하면 AI가 소리를 듣고 폐 이상 여부를 감지한다. 또 미국 덱스콤(Dexcom)은 채혈 대신 포도당으로 당뇨 환자의 혈당 수치를 측정하는 기기를 내세웠고, 프랑스 위딩스(Withings)는 변기 안쪽에 부착해 소변을 분석할 수 있는 센서를 CES에서 선보인다.
프랑스 뷰티 대기업 로레알도 AI 기술을 적용한 뷰티 제품을 내놓는다. 손가락을 편하게 쓸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입술 위치를 감지하고, 거기에 맞춰 립스틱을 바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AI 기반 보조도구 '합타'(HAPTA)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