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강조했던 핵심 공약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법'이 새해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게임업계는 해당 법안을 강력히 반발하는 반면, 게임 이용자들과 시민사회는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만큼, 치열한 갈등이 전망된다.
13일 게임업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새해 첫 번째 쟁점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법이다. 이 법의 핵심은 확률형 아이템의 정의를 명확히 법으로 규정하고, 소비자가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뽑을 구체적 확률 정보를 공개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전투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이용자가 게임 속 무기나 장비 아이템을 뽑을 때 어떤 아이템이 어느 정도 확률로 나오는지 알려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 제도가 소비자들에게 현금 결제를 유도하고 확률이 조작된다는 의구심까지 일어나자 법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니지M, 모두의마블, 던전 앤 파이터, 메이플스토리 등 인기 게임 여러 개가 유사한 논란에 휩싸였다.
논의 초반만 해도 법안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했다. 실제 지난달 20일 국회 문체위 법안소위에선 여야 의원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법 처리가 점쳐졌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관련 법안을 여러 개 발의했던 민주당 측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온 것. 한 문체위 관계자는 "김윤덕 민주당 의원의 강한 반대가 있었다"면서 "반대 이유는 현재도 자율규제가 있고 법이 통과되면 해외게임 대비 국내 게임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문체위 법안소위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법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산회했고, 여야는 "다음 법안소위에서 최우선 논의한다"는 단서를 달아놨다. 하지만 다음 문체위 법안소위가 이달 30일로 예정되면서 해당 논의는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게임 소비자들은 법안 통과가 불발된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큰돈을 번 게임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11일 간담회에서 "게임산업을 보면 자괴감 느낀다. 삼성, 현대 같은 재벌 3세들은 경영을 혁신하는데 오히려 게임사들이 보수적 경영을 한다"며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으로 우려먹고 가족끼리 나눠 먹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앞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법을 반대한 김윤덕 민주당 의원을 향해 "확률형 아이템으로 떼돈을 번 일부 업계의 주장을 그대로 떠들고 있으니 놀랍기만 할 뿐"이라며 비난한 바 있다.
반면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확률이 공개되면 작품의 시스템 전반이 노출되고 게임 회사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일부에선 확률 공개로 오히려 더 좋은 아이템을 쉽게 얻으려는 심리가 작용해 현금 결제가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최근 중국이 5년 만에 한국 게임 7종에 대한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증)를 발급한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중국은 자국 내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법적으로 엄격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게임에는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이다. 실제 국내에 진출한 중국 게임 중 확률형 아이템 자율 규제 기준을 어긴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됐다. 이런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법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은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강한 규제를 받는 '역차별'을 당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처럼 게임업계와 게이머, 정치권이 갈등을 거듭하면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법 논의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문체위 법안소위에서 법안 처리가 불발된 후 여야 의원들은 '네 탓 공방'을 펼치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