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에 휘둘린 2022년 영화계… 정부가 나서야

입력
2022.12.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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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는 올해를 암울하게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쳤다. 극장 관객 동원에 한계가 분명했다. 마스크를 쓰고 찾은 극장에선 검문소를 통과하듯 체온 측정을 해야 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1월에만 180만 명을 모은 게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5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후 관객이 곧바로 몰렸다.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자 낙관론이 팽배했다. 때마침 칸영화제에서 감독상(‘헤어질 결심’의 박찬욱)과 남자배우상(‘브로커’의 송강호) 수상 낭보가 전해졌다. 코로나19로 관객이 73%가량 급감한 극장가가 불황의 터널을 빠르게 벗어나는 듯했다. 연중 최고 대목인 여름에 한국 대작 영화 4편(‘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이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할 정도로 영화계는 희망회로를 바쁘게 가동했다. 2019년 수준으로 곧바로 돌아갈 수 있다는 예측이 일각에서 나왔다.

섣부른 낙관이었다. 관객은 아직 극장으로 돌아올 준비가 안 됐다. 인플레이션으로 지갑은 얇아졌는데, 관람료는 급등했다. 관객은 예전보다 신중해졌다. 대형 스크린과 고음질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편리성과 가성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극장은 콘텐츠 경쟁에서도 OTT를 압도하지 못했다.

올해 극장 전체 관객 수는 1억1,2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었으나 2019년(2억2,667만 명)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내년이라고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듯하다. 이변이 없는 한 1억4,000만 명 정도로 예상된다. 연간 관객 2억 명은 돌아가기 힘든 옛일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뉴 노멀에 적응해야 한다.

연간 관객 수가 1억4,000만 명 수준으로 고착하면 많은 점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뀐다. 영화 투자는 급감하고, 될 영화에만 돈이 몰린다. 영화 제작이 블록버스터 또는 저예산으로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 톱스타 출연료만 빠르게 올라가기 마련이다. 영화관람료 3%를 징수해 조성하는 영화발전기금이 줄어든다. 다양성이 떨어지고 영화 경쟁력은 약화된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은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으로 극장 수를 줄인다. 영화 유통망이 약화하면서 관객 동원에 한계점이 생기고, 불황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중문화를 선도한다는 영화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누군가는 OTT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OTT에 의지해 살길을 찾기엔 장애물이 많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는 수익을 배분하지 않고, 제작 수수료만을 준다. 극장처럼 영화 흥행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식이 아니다. 그나마 10~20%였던 수수료마저 최근 많이 내려갔다는 후문이다. 국내 제작사끼리 출혈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OTT에 영화나 드라마를 ‘납품’해도 남는 돈이 딱히 없다고 한다.

바뀐 영화 생태계에서는 새로운 사업 유형이 필요하다. 영화인들도 잘 안다. 하지만 시장의 관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게임의 룰’ 변경이 절실하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영화발전기금 일부를 글로벌 OTT가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극장들의 영화 연간 관람권 도입 독려를 위해 예산 지원을 고려해도 좋다. 정부 정책은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 움직일 때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