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명의 사상자를 낸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다. 소음, 먼지를 막기 위한 방음터널이 화재에 취약한 구조물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화재 안전 관련 규정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29일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전국 방음터널은 국도 9개,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18개, 민자고속도로 25개 등 총 52개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분포해있다.
방음터널에 사용되는 재질은 화재에 취약하다. 방음터널은 철제 H형강으로 만들어진 구조체를 보통 플라스틱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폴리카보네이트(PC)등으로 덮어 제작된다. 플라스틱은 고온에서 열이 가해지면 순식간에 불에 녹을 수밖에 없다. 유독물질이 나오는 데다 소재가 녹아 밑으로 떨어지면서 더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구조체도 문제다. 2019년 한국방재학회논문집에 실린 '방음터널의 화재 안전성에 관한 국내 연구동향 분석'을 보면, H형강은 평균 온도가 섭씨 538도를 넘을 경우 변형, 붕괴될 수 있다. 입구, 출구만 개방된 터널에서 불이 날 경우 평균 5분 이내에 1,000도 이상 온도가 치솟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나 방음터널에 타지 않는 소재를 써야 한다는 규정은 현재 마련돼 있지 않다. 또 소화기 같은 방재시설을 추가로 설치할 강제 규정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음터널이 소음을 막아주는 효과는 있지만 그간 화재 안전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밀폐된 방음터널 외에 다른 대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음터널 화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8월 광교신도시 하동IC 고가차도에 설치된 500m 방음터널은 승용차에서 붙은 불이 방음벽으로 번지며 200m가량 소실됐다. 당시 사고 역시 터널 전체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