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이 예견된 불치병을 앓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가족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미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음에도 당장 인공호흡기, 혹은 혈액투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돌아가신다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중환자실로 옮겨 달라고 하는 보호자들이 적지 않다. 환자가 아니라 가족들이 죽음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중환자실에서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누워 있는 환자의 병상을 계속 지켜볼 수도 없고, 환자가 돌아가실 때까지 연명의료를 마음대로 중지할 수도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 결정을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중환자실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올라 괴롭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수년 동안 급성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초등학생이 있었다. 아이는 백혈병 발병 후 항암제 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 등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았다. 치료 효과가 좋을 때는 완치의 희망도 가져 보았지만 재발이 반복되었고, 결국 더 이상 항암치료에 반응할 가능성이 없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며칠 후, 환자의 부모가 담당 의료진을 찾아 환아를 퇴원시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아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소망 중 하나가 강아지를 길러 보는 것이었는데 백혈병 치료로 저항력이 약화되어 세균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진과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더 이상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매일 이루어지는 채혈검사, 수액주사, 시술 등으로 인해 아이가 힘들어하던 모습과 병원의 임종 과정에서 벌어지는 심폐소생술 같은 충격적인 장면을 여러 번 지켜봤던 부모는 사랑스러운 아들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되었다.
이런 사정이 잘 이해되어 의료진도 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아이는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한 달간 강아지를 키우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이 세상에 와서 함께 보내면서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마지막 모습만이라도 중환자실에 입원한 말기 환자가 아니라, 강아지와 놀고 있는 행복한 아이의 모습으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31.8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75%(23.8만 명)가 병원에서 임종했다. 병원은 생명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공간으로, 임종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인공호흡기 같은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목에 구멍을 내어 관을 꽂고 연명의료 기계에 둘러싸여 고통스럽게 삶을 마무리했던 환자의 모습을 가족들은 기억에서 떨칠 수가 없다.
어떤 모습으로 임종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임종 장소이다.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가정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1991년 77%에서 2021년 17%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환자를 집으로 모시기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한다면, 임종이 임박했을 때 환자를 중환자실보다는 병원 내 임종실로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하는 것은 남은 가족에게도 위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누군가 그를 기억하고 있다면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순간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의 모습도 중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