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내년 상반기까지 전 부처에서 민간단체 국가보조금 집행 현황에 대한 전면적 감사를 실시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시민단체 회계 투명성 강화를 바탕으로 '제2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는 뜻이다. 감사 결과가 나온 뒤 문제 사업 정리 등을 포함한 국가보조금을 받고 있는 민간단체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2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현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2017~2021년)간 각종 시민단체와 협회, 재단, 연맹, 복지시설 등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은 총 22조4,649억 원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이 조사한 기간(2016~2022년)으로 확대하면 총 31조4,665억 원 규모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3조7,325억 원이던 보조금은 2021년 5조3,347억 원으로 늘어나는 등 연평균 3,555억 원씩 증가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지원한 민간보조금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수석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했으나 (회계 부정 등에 따른) 환수금액을 보면 보조금 사업이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2016년 이후 전 부처에서 적발한 문제사업은 총 153건, 환수금액은 34억 원에 불과했다. 부처가 적발하지 못한 부정 수급 사례가 의심된다는 뜻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이 급증했음에도 관리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 수석은 특히 "윤석열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는데, 그 배경에는 정의연 등 보조금, 기부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시민단체의 공금 유용과 회계 부정을 방지할 수 있는 이른바 '윤미향 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실은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로 24건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 퇴진 집회를 주최하고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친북성향 강연을 해 논란이 됐던 촛불중고생시민연대(촛불연대)를 '목적 외 사용' 단체로 콕 집었다. 여성가족부의 동아리 지원 사업 당시 '종교·정치적 색채를 갖는 동아리 지원 불가'라고 공고했음에도, 정부 보조금을 받은 이 단체가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면서 '등록 말소'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중고생에 대해 촛불을 들게 한 (단체에) 지원금이 나간 것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보조금의 집행실태와 규모를 파악해보니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며 민간단체 보조금 전수조사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남북교류 사업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각각 식비 이중지급과 해외 출장 여비 등의 부당 사용이 적발됐다. 그러나 해당 단체로부터 환수한 보조금은 각각 210만 원, 180만 원에 불과했다. 세월호 피해자 지원을 위한 4·16 재단은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하는 등 총 10건의 부적절 사용이 드러나 1,400만 원을 환수했다.
대통령실은 새해부터 노동조합에 이어 민간단체의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선다. 정부가 노조와 시민단체에 고강도 감사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이들이 야권과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배경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을 포함한 일부 시민단체들을 야권과 이권을 나누는 집단으로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보조금을 취하는 행태는 묵과할 수 없다"며 "국민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이에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보조금 집행 현황에 대한 전면 감사를 실시한다. 감사에서는 △지원단체 선정 과정 △투명한 회계 처리 △보조금이 목적에 맞게 사용되었는지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 이후 문제가 드러난 사업은 과감하게 정비하고, 지자체 보조금 사업도 부처 책임으로 관리되도록 관리 규정을 보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