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귀촌에 대한 열기가 한동안 뜨거웠다. 특히 제주에 이주해 살아보는 것에 대해서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자리 부족, 높은 물가 등 경제적인 문제로 제주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이주를 고려하는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육지와 동떨어져 있는 제주섬은 다른 섬지역보다 지리적으로 열악하여 일반적인 귀농, 귀촌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이 같은 조건 속에서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농부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주에서 성공적으로 사업과 삶을 정착시킨 청년 기업인이 있다. 바로 슈퍼파머스 이성빈 대표다.
여러 사업을 하시는 것 같다. 어떤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는지
농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플랫폼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농산물의 약 20%는 등급 외(못난이)농산물로 헐값에 처분되거나 폐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농산물들이 폐기 되거나 썩을 때 발생되는 이산화탄소 및 악취는 심각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됩니다.
저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팜코밍(Farm-combing) 이라는 농산물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장을 의미하는 팜(Farm)과 빗질을 의미하는 코밍(combing)을 합친 단어죠. 농장에 가서 버려지거나 인력부족으로 수확하지 못한 농산물을 직접 주워와서 활용하는 식이에요. 지역 내 가공업체와 함께 업사이클링하여 상품으로 재탄생시키고 판매해서 농민들과 상생하는 구조입니다. 얼마전에 오픈한 강정동 그린포니 & 팜에서는 이러한 농산물 업사이클링 식음료들을 직접 맛보실 수 있고, 업사이클링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사업이 있습니다. 인력이 부족한 농가와 워킹을 희망하는 전 세계 청년들을 연결하는 구조인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듯이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워킹홀리데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저희가 워킹홀리데이 캠프도 운영하고 있거든요. 워킹홀리데이로 온 외국 청년들은 저희 캠프에 거주하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일손이 부족한 제주 농가에서 일도 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여행도 합니다. 저희와 같이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착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것으로 들었다. 간단히 소개해달라.
제주 농촌을 색다르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 팜코밍 처럼 소셜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함께 경험해볼 수 있다던지 관광지 중심이 아니라 로컬 투어에 맞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죠. 귤 농장 체험은 많죠. 혹시 레드향 농장 체험은 해본 적 있으세요? 조금 더 이색적인 것들 많이 체험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어요. 제주 농촌에서만 할 수 있는 로컬 투어, 예컨대 해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습니다. 또 제주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에요. 이름도 ‘가짜농부’, ‘청년 귀촌귀농의 정석’ 같이 재밌게 네이밍을 해서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농촌을 재밌고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서 정착도 고려해볼 수 있게 되는거죠.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것 같은데, 팀원은 몇 명이고 어떤 일들을 나눠하고 있나
현재 슈퍼파머스 내에서는 10명 정도의 팀원이 일을 하고 있지만 지역 농가, 협의회, 기관, 협력단체까지 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을 나눠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저희는 농촌의 사회문제들을 단순 노동이 아니라 기술기반 그리고 협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소셜 기반의 에그테크 스타트업입니다.
대구에서는 어떤 사업을 했는지 그리고 제주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구에서는 관광 관련 사업들을 했습니다. 관광 숙박업, 여행업에 종사했죠. 외국인 여행자들이 대구에서 머무르면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기획해서 운영했어요. 그리고 대구에서 사업을 하면서 제주를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는 제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 환경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외국인 여행자들도 좋아하는 여행지이기도 하고요. 약 8년 전부터 제주 이주를 생각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준비를 많이 했죠. 그러다가 7년 전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제주로 바로 이주했습니다. 우선 와서 부딪혀가면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요. 그렇게 제주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제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제주에 연고가 있었나
연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힘들었죠. 저희는 대정읍이라는 농촌에 살고 있어요. 근데 저는 30년 넘게 도시만 살았거든요.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농촌에 거주하게 되면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불편하고 어려운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지역민들과의 관계, 교류를 쌓는 부분도 어려웠고요. 지역과 농촌을 이해하고 공부해야했어요. 거의 3년 간은 이장님을 따라다니면서 마을에서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동네 어르신들도 인정을 해주시기 시작했고 제가 여러 활동과 사업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농사를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처음 농사를 짓다보니까 엄청나게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자격증도 따보고 공부도 해봤지만 크게 도움은 안됐어요. 오히려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배운 것들이 훨씬 도움이 됐어요. 이장님이 고구마밭을 농사하면 도와드리고 그 밭에서 했던 것들을 똑같이 저희 밭에서 해보는 식으로요. 말 그대로 실습하고 곧바로 복습해보는거죠.(하하)
청년농부들과는 어떤 상생 관계를 이어가고 있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해달라.
제주청년농부라는 소상공인 농업회사법인이 있습니다. 그 회사는 청년농업인들이 운영하고 있어요. 예비청년농들이 귀농, 귀촌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랑 사무실도 같이 쓰고 회의도 자주 합니다. 저희가 운영 중인 프로그램과 연계도 많이 하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농가 프로젝트로 일손을 같이 돕고, 그렇게 생산된 농산물을 홍보도 함께 하고, 업사이클링 상품도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청년 귀농, 귀촌 교육에 대해 설명해달라
제주청년농부와 저희 회사가 함께 캠프를 운영 중인데요. 이 곳 농촌에 귀농, 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합니다. 제주청년농부 팀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지원을 합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미국인 친구가 기억에 남아요. 저희 사업 초창기에 왔던 친구인데요. 잠깐 있을거라더니 3년을 캠프에서 함께 살았어요. 의외로 외국인들이 제주 농촌에 와서 농사도 짓고 로컬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글로컬(글로벌 + 로컬) 사업 위주로 추진하고 있고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외국인들이 못오니까 사업에 타격을 입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국내 청년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해외를 못 나가니까 저희 캠프에 많이 오시더라고요. 캠프 최대 인원이 50명인데 매달 예약이 꽉 차있었어요. 또 오시는 분들이 다 청년이고 그러니깐 모여서 얼마나 재밌겠어요. 그때 온 친구들이 한 달 있겠다고 와서는 몇 달 있다가 결국 정착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희 통해서 한 50명은 제주에 정착했어요.
제주 농촌에 정착하고자하는 청년들, 특히 제주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창업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히려 농촌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보다 농촌이 숨어있는 매력이 많아요. 꼭 도시에서 내가 해야할 꿈과 목표를 찾지 말을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농촌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있으니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미래 산업을 봤을 때에도 1차 산업인 농업을 활성화시켜야 하거든요. 뜻있고 재능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유입되어서 지속가능한 미래 농촌을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선배 기업으로서 적극적으로 도울 거고요. 언제든지 찾아주세요.
하지만 또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다는 것도 유념해야합니다. 인프라가 부족한 부분도 있고 분명 단점도 있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해야하고, 더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들어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