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이브에도 텍사스 '이민자 밀어내기'… 부통령 집앞에 강제 이송

입력
2022.12.26 08:29
"국경 막아라" 공화 주지사, 불법 입국 증가 항의

혹한의 크리스마스이브에 미국 공화당 소속의 텍사스 주지사가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관저 앞으로 또 강제 이송했다. 반(反) 이민 정책을 표방해온 텍사스주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유화적 이민 정책을 향해 일종의 정치적 시위를 이어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국경 지역에서 이민자를 즉각 추방하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42호 규제') 폐기가 임박하면서 불법 입국 시도가 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 지역 매체 ABC7에 따르면 불법 이민자를 태운 버스 3대가 전날 워싱턴의 해리스 부통령 관저 앞에 도착해 이들을 내려주고 떠났다. 당시 워싱턴DC는 1989년 이후 두 번째로 추운 성탄 이브라는 혹한의 날씨였다. 특히 일부 이민자는 반팔 T셔츠 차림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지역 구호단체 덕분에 이들은 인근 교회로 안전하게 옮겨졌다.이 단체는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강추위 속에서 부통령 자택 앞에 내려준 것이라고 밝혔다. 애벗 주지사의 이런 행동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입국 정책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간 일부 남부 지역의 공화당 주지사들은 국경을 통한 중남미로부터의 불법 이민을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민주당 소속 기관장이 있는 지역으로 이민자들을 이송하는 식으로 항의해왔다. 앞서 지난 9월에도 애벗 주지사는 텍사스로 유입된 불법 이민자를 버스에 태워 해리스 부통령 관저 앞으로 보냈었고,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와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로 유력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도 이런 식의 항의를 한 바 있다.

애벗 주지사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국경이 안전하다는 거짓말을 멈추고 즉시 연방 자산을 이곳에 배치해야 한다"면서 "더 많은 무고한 생명을 잃기 전에 남부 국경을 보호하라는 헌법이 명령한 의무를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국토안보부(DHS)는 전날 성명에서 "우린 국경에서 이민·공중보건 관련 법의 완전한 이행을 지속하고 있다"며 "허가 없이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은 '42호 규제'에 따른 법원 명령에 의해 추방되거나 그 절차를 밟게 된다"고 반박했다. 또 현재 2만3,000명의 국토안보부 인력이 남부 국경 안전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 정부는 국경에서의 인신매매 조직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멕시코 당국과 조율된 단속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42호 규제'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2020년 3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한 정책으로, 코로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불법 입국해 미국 망명을 신청한 불법 이민자의 즉각 추방을 허용한 행정 명령이다. 바이든 정부도 이 정책을 이어가다 지난달 워싱턴 연방법원이 이 조치가 행정절차법 위반이라며 지난 21일부로 기한 종료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 명령 폐지를 눈앞에 둔 지난 19일 연방대법원이 정책 존치를 주장한 일부 공화당 주 정부 요청에 따라 폐지를 일시 보류하고 심의에 착수하면서 당분간 이 명령은 유지되고 있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지난달 멕시코와 접한 남쪽 국경에서 모두 23만3,740명이 불법 입국하다 적발됐다고 전날 밝혔다. 이는 10월보다 늘었고 11월 기준으로는 역대 가장 많은 수치다. 또 당초 '42호 규제'의 폐지 시효가 다가오면서 미국 남부 국경지대에는 중남미 출신 불법 이민자가 대거 몰려들면서 우려를 낳았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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