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죽지?" "이번 판도 GG인 듯"… 철저한 계획범죄 '계곡살인' 전말

입력
2023.01.05 13:00
사건 초기 '비의도적 사고 따른 익사' 처분
발생 1년 반 후 검찰로… 증거 부족에 난항
살인 고의 밝힌 '복어독·낚시터' 미수 사건
1심선 이은해 무기징역·조현수 징역 30년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은해=(복어독이 많이 든) 알이 없어서 이번 판도 GG일 듯(실패일 듯).
▶조현수=(복어) 피나 다른 것들로도 갈(죽을) 수 있대.
▶이은해=근데 왜 쟤 멀쩡하냐, 밀복(복어의 한 종류)이라 그런가. 아오, 진짜.

(2019년 2월 17일 '양양 복어독' 사건 당일 텔레그램 대화)

2021년 말, 계곡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인천지검 형사2부 검사들은 이은해(31)와 내연남 조현수(30)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확인한 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해자 윤모(사망 당시 39세)씨에게 복어독을 먹인 뒤 게임하듯 죽는지 안 죽는지 지켜본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이은해가 6차례나 남편 윤씨의 생명보험을 다시 살린 기록에 주목했다. 윤씨가 사망한 계곡살인 사건이 납입금 연체로 생명보험 효력이 상실되기 4시간 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입증하느냐였다. 윤씨는 어떤 신체접촉도 없이 계곡에서 '직접' 뛰어내려 사망했다. 사건 초기 단순 변사 처리됐을 만큼 증거는 부족했고, 살인죄 적용에 필요한 고의성 입증도 요원했다.

이은해와 조현수의 대화를 발견한 것은 '천운'에 가까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증거물을 다시 포렌식하던 중 삭제됐던 텔레그램 내용이 복원된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살인 고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됐다.

"오빠, 뛰어" 윤씨가 생전 들은 이은해의 마지막 말

사건 경위는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무렵 여행객이 모두 떠난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 이은해가 일행에게 '떠나기 전 남자들만 다이빙 한 번씩 하고 가자'고 권유했다. 수영을 못하는 윤씨는 '난 못 뛰겠다'고 말했지만, 이은해는 '다른 애들은 다 뛰는데 오빠는 왜 안 뛰냐'며 열 살 이상 어린 조현수 등과 비교하며 다이빙을 종용했다.

이은해는 '그럼 내가 대신 뛰겠다'며 물속에 뛰어들 것처럼 말했다. 조현수도 윤씨가 뛰어들면 구해줄 것처럼 '형, 뭐해요'라고 재촉했다. 윤씨는 결국 이은해의 '오빠, 뛰어'란 외침에 4m 높이 바위에서 3m 깊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주변에 구명조끼와 튜브가 있었지만, 윤씨는 방치됐고 결국 숨을 거뒀다.

윤씨가 같은 해 10월 변사 처리되면서 사건은 내사종결됐다. 부검 결과 특이점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비의도적 사고에 따른 익사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이은해는 한 달 뒤 보험사에 윤씨의 생명보험금 8억 원을 청구했지만, 사망 경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당했다.

경찰은 윤씨 유족 측 제보와 언론보도로 타살 의혹이 커지자 재수사에 착수했고, 2020년 12월 이은해와 조현수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신체접촉 없는 살인'…고의 밝힌 '복어독·낚시터' 사건

검찰 수사는 살인 혐의에 대한 물증이 충분치 않아 진척이 더뎠다. 사망을 인식하고 계획했다는 고의도 입증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은해가 윤씨와 2017년 혼인 후 함께 산 적 없이 다른 남성과 동거해온 점 △윤씨가 개인회생을 신청할 정도로 재정파탄 상태였지만 실손보험은 방치하고 생명보험료는 납부한 점 △보험을 되살린 뒤 만료되기 4시간 전에 사건이 발생한 점 등 범죄 의심 정황은 넘쳤다.

검찰은 전면 재수사에 돌입했다. 살인사건이 통상 피해자와 가해자만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것과 달리, 이 사건은 범행이 의심되는 현장에 항상 지인들이 동행했다. 보험금 수령에 대비해 '사고사' 목격자 역할로 포섭한 것으로 추정됐다.

검찰은 이은해와 조현수의 범행 현장 사전답사 여부와 함께, 또 다른 범행시도가 있었는지 조사했다. 수사기록을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현장검증, 압수수색, 계좌·통화 추적, 감정·자문을 병행했다. 이은해·조현수의 주변인 30여 명을 조사하면서 두 사람이 오간 장소를 꼼꼼하게 살폈다.

검찰 수사결과 이은해·조현수가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고(2019년 2월 17일 '양양 복어독'), 낚시터 물에 빠뜨려(2019년 5월 20일 '용인 낚시터') 윤씨를 살해하려 한 살인미수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복어독 사건에선 살인 고의를 입증할 텔레그램 대화가 발견됐다. 낚시터 사건에선 물에 빠졌다 살아 나온 윤씨가 이은해를 향해 '너가 나 밀었잖아'라고 말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확보됐다. 이은해는 두 차례 모두 범행 시도 직전에 돈을 빌리거나 '카드깡'으로 연체 보험료를 납부한 뒤 생명보험 효력을 되살렸다.

살인 혐의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자, 검찰은 2021년 12월 이은해·조현수를 소환했다. 조사 과정에서 계획살인 증거가 제시되자, 두 사람은 이튿날 도주했다. 4개월 동안 전국을 누비던 이들은 공개수사 전환에 따른 제보와 이은해 아버지의 설득으로 지난해 4월 경기 고양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붙잡혔다. 검찰은 추가 압수수색을 통해 도주 후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증거가 담긴 대포폰과 노트북, USB 등을 발견했다.

미성년 때부터 '性' 이용 착취 전력…'사이코패스' 진단

검찰은 이은해가 '가스라이팅(심리 지배)'을 통해 2011년부터 9년간 자신과 가족 등의 계좌에 돈을 보내도록 해 윤씨에게 2억4,260만 원 이상을 착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윤씨 부친이 신혼집 마련 비용으로 건넨 1억 원도 이은해 채무 변제에 사용됐다. 결국 윤씨 재정이 파탄 나자 남편 보험금 8억 원을 타내려고 이은해가 계획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이은해의 과거 전력도 속속 드러났다. 미성년자였던 2009년 특수절도죄 등으로 4차례 소년보호사건 송치 처분됐다. '조건만남'을 미끼로 남성들을 모텔로 유인한 뒤, 이들이 샤워하는 사이 금품을 훔친 것이다. 2017년부터는 해외여행 중 물품을 도난당했다고 허위 신고해 수차례 보험금을 탄 이력도 있었다. 이은해의 지인은 검찰 조사에서 "이은해는 '인생 한 방'이란 생각으로 살았다"고 전했다.

윤씨와의 관계는 2011년 무렵 시작됐다. 이은해는 윤씨 몰래 다른 남성들과 사귀거나 동거해왔고, 2014년 7월쯤 동거남과 태국 파타야로 여행을 갔다가 상대가 익사해 사고사 수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매달 450만 원 상당의 안정적 수입이 있던 윤씨는 2018년 6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윤씨는 당시 지인에게 라면과 물을 사기 위해 3,000원을 빌려야 할 만큼 곤궁했다.

윤씨는 극단적 선택을 위해 등산용 밧줄을 구매하거나, 장기매매 브로커와 접선하면서도 아내인 이은해를 걱정했다고 한다. 윤씨는 돈을 계속 요구하는 이은해에게 '생일 선물도 못해주는 처지에 미안한데, 밥과 물을 살 돈도 없으니 3만 원만 입금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욕설과 폭행을 당해도 윤씨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이은해에게 꼭 인정받고 싶다'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다.

인천지검 1차장검사로 당시 수사를 지휘한 조재빈 변호사는 "이은해는 남성을 상대로 성을 매개로 한 착취적 행동을 일관되게 보였다"며 "공감능력은 부족하고 자기도취적 성향은 강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은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이은해의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가 31점이었다고 밝혔다. 25점 이상이면 통상 성격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이 교수는 "극심한 생활고와 오랜 가스라이팅으로 윤씨가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1심 무기징역·징역30년…이은해·조현수 여전히 혐의 부인

인천지법은 지난해 10월 이은해·조현수의 살인 및 살인미수 등 혐의에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은해는 피해자를 경제적 착취 대상과 도구로만 이용하다가 재정 상황이 파탄에 이르러 관계 유지 필요성이 없어지자, 내연관계였던 조현수와 그를 살해해 생명보험금 8억 원을 수령키로 공모했다"고 밝혔다.

다만 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접 살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가스라이팅으로 윤씨를 뛰어내려 죽게 만들었다기보다는, 구조하지 않은 데 따른 간접 살인이라 본 것이다. 그럼에도 작위에 의한 살인과 죄의 무게는 동등하다고 봤다.

양측 항소로 지난달 14일 2심 재판이 시작됐다. 이은해·조현수는 여전히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간접 살인이 아니라 직접 살인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