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3조 벌어들인 중국인 마약왕… 초호화 도피 생활의 전말

입력
2022.12.25 15:53
마약 압수돼도 다시 보내주는 마케팅...아시아 장악
전용기 타고 초호화 생활 즐기다 합동작전에 검거

멕시코의 엘 차포 구즈만, 콜롬비아의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함께 '세계 3대 마약왕'으로 불린 아시아·태평양 마약 조직의 수장이 법의 철퇴를 맞게 됐다. 수많은 가명으로 불린 그의 본명은 '체치롭'.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미얀마·태국·라오스 접경 지역인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마약을 대량 판매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검거됐을까.

미국 법원도 속여... "아이폰만큼 촘촘한 공급망 갖춰"

25일 영국 BBC와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 등에 따르면, 1963년 광저우에서 태어난 롭은 1988년 지역 범죄조직에 들어갔다. 1990년대엔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마약을 조달해 중국 본토로 수출하는 밀수 조직의 중간 보스로 활동했다. 이 시기 롭은 치안은 허술하고 마약 생산량은 많은 골든 트라이앵글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독자 판매망 구축에 나섰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롭은 2000년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마약 반입 경로를 집중 수사한 미국 경찰에 체포됐다. 뉴욕 1심 법원에서 종신형을 받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병든 부모와 폐질환을 앓고 있는 12살 아들을 돌봐야 한다"고 눈물로 읍소해 형량을 9년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물론 모두 거짓말이었다.

무사히 출소한 롭은 아시아 전역에 마약 판매 체계를 새로 구축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기성 마약 조직들이 유통 단계에서 적발되면 납품을 책임지지 않았던 것과 달리, 그는 마약을 끝까지 고객들에게 보내줘 신뢰를 쌓았다.

이후 롭의 조직은 일본의 '야쿠자', 호주의 '헬 엔젤스' 등 각국의 폭력 조직과 협업해 거대한 판매망을 형성했다. 애플의 아이폰만큼 복잡하고 촘촘한 판매망에 힘입어 2018년 이후 아시아·태평향 지역 마약 시장의 70%를 점유했다.

매년 23조 벌어들인 마약왕, 하룻밤에 817억원 쓰기도

롭의 재산은 파악조차 어려운 규모로 불어났다. 유엔 마약범죄사무국(UNODC)은 롭이 2018년 이후 매년 177억 달러(22조7,200여억 원)씩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했으나, 그의 자산 총액을 정확히 헤아리는 데는 실패했다.

롭은 마카오와 대만 등에서 초호화 도피 생활을 즐겼다. 2016년 롭의 조직원 1명이 검거돼 인터폴 적색수배자 명단에 올랐지만, 그는 돈을 무기로 법망을 태연히 피해 다녔다. 태국 킥복싱 챔피언 출신의 경호원 8명이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켰다.

롭은 수배 기간에도 아시아 각국의 카지노를 드나들며 하룻밤에 최대 6,000만 유로(817억 원)를 쓰고 다녔다. 매해 생일이면 전용기로 가족들을 실어 날라 아시아 최고급 호텔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롭의 초호화 도피 행각은 호주 경찰이 주도한 글로벌 합동 검거작전으로 막을 내렸다. 호주 경찰은 롭을 잡기 위해 미국·중국·캐나다·태국 등 8개국 경찰과 협력했고, 올해 1월 대만에서 캐나다로 이동하던 롭을 체포했다. 호주 사법당국은 이달 22일 롭을 13개 혐의로 기소했다. 롭의 모든 혐의가 인정되면 종신형 선고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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